유독 가을이 길다. 아직 추워지지 않은 날씨를 감사해야 하는데 지구가 더워지는 것 같아 괜히 무섭다. 이러다가 몇 년 뒤엔 겨울이 겨울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휴대폰에 떠 있는 온도는 17도쯤이었고 추울까 봐 습관처럼 껴입고 외출을 하려다가 현관문을 여니까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입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밖을 나오니 햇살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선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래도 집구석이 좋다. 나오면 좋은데 나가기까지는 집이 좋다. 11월은 추워서 싫은데 요즘은 춥지 않아서 좋다. 춥지 않으니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 추위는 싫지만 빨리 지구를 위해서 추워졌으면 좋겠다는 괜한 생각이 들었다.
눈이 새하얗게 서려 있는 영화를 봤다. 흰 눈엔 빨간색이 어울린다. 크리스마스, 코카콜라, 빨간 목도리, 산타의 옷,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의 빨간 장식들, 루돌프 사슴 코.
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겨울은 추운 계절이지만 이런 것들은 왠지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캐롤은 겨울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싫은 겨울을 그나마 좋게 해주는 것들이다. 뭔가 이런 의미 있는 것들을 가득 채워주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다.
또 겨울에 뭐가 좋은 게 있더라.
언젠가부터 인간관계에 대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게 된다. 결국은 서로의 시간이 다르니까? 큰 힘을 들이지 않게 되었던 건 노력하는 힘에 비해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다 핑계였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만큼 뜨겁지도 않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면 네가. 그래서 그런 생각에 더 이상 힘들지 않기 위해서 나름 방법을 강구했다. 처음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이상한 나의 글을 쓰다가 사람이 나오는 이상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상한 소설에는 나를 거쳤던 몇몇 사람의 행동을 따와서 누군가와 합치고 빼고 과장하면서 한 세계 안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또 그런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람을 만들었다. 그걸 2년째 했더니 내가 겪는 모든 것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공백에서 어떤 행동과 말들이 기억에 남는지 내가 무엇을 그 사람한테 전하고 있는지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전달받는지 기억에 남기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적당하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어떤 것을 보내고, 머무르는 것을 느끼고 있는 지도.
오랜 과거의 나와 가까운 과거의 나를 용서하는 법도 어느 정도는.
그래서 평범한 하루에도 어떤 상황이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상황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건 부정적이게 된다. 가령 어쩔 수 없다 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이 말이 전해지면서 누군가를 오염시키진 않을까 지나고 보면 걱정이 된다. 하지만 뭐 나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니 계속해서 부정적이어야겠다. 다만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 소설은 어려운데도 쓰게 된다. 내가 적당하게 좋아하는 것과 부정적인 것들을 대하면서 어떤 것에는 어느 정도 솔직해지고 그리고 비겁해지고 싶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면 안 된다. 소설은 거짓말이니까. 실제 이야기가 되면 비극이 되니까. 이 글에서도 어느 정도 거짓과 진실을 섞게 되었다. 이런 모순이 참 좋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