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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Dec 18. 2023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kaCAbIXuyg



몇 년 전부터 평일은 복잡한 일과를 반복했고 주말은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일상은 감정을 괴롭히지 않는다. 감정이 괴로운 일상은 후유증이 오래 남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내게 작고 큰 변화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버튼 중 익숙함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얼마나 후회하는지 말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결국 해결책은 자신을 괴롭히는 후회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잊게 될 때의 두려움은 자기 자신 역시 잃는 것이다. 그 몫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 역시 그러는지 상흔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부터 감정의 변화가 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그 생각의 연장선으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감정에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에서 50까지만 갔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너무 기뻐서도 안되고, 슬퍼서도 안될 것 같고, 어떤 감정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던 건 어쩌면 방어기제일 것이다.

무엇보다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모든 게 의미 없는 것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의미한 것에 시간을 더 쓰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무의미가 주는 결과는 생각보다 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에 치중하게 만든 것 같다. 그래서 괴로운 감정도, 좋은 감정도 모두 50이 되는 것이 익숙했다.


해가 갈수록 무언가에 베이는 잦은 상처들이 남는다. 예전엔 잘 나은 것 같은데 이제는 맞는 연고도 없는 것 같다. 잊을 수도 없이 모기 같은 간지러움이 괴롭히는데 하나하나 치명타로 다가온다. 몸과 마음은 약해져서 이제는 모기도 말라리아 같이 공포스럽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작년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기도 했다. 모순적이게도 여전히 무의미함은 내 깊은 마음속에 있지만.


올해를 돌아보면 겉만 도는 대화보다는 조금은 내 마음속의 대화를 끄집어낸 한 해였다.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은 언제라도 할 수 있던 말들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언제? 보다는 왜? 그 말을 해야 하는지가 필요했다. 왜?라는 의문은 스스로 풀어가면서 조금씩 말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의 선을 넘어서 더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더 이 의문들에 조금은 더 변화를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변화한 건 20년 때부터 시작한 소설과, 21년에 시작했던 주식블로그였다. 그 이후로는 계속해오던 것을 해오면서 1년의 루틴을 만들었다. 블로그는 가능한 매일, 소설은 단편소설로 4편을 쓰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 2~3편을 쓸 수 있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블로그를 하면서 주식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 기록도 되고, 복기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았다. 그렇게 2년을 하니깐 방송제안도 왔다. 유튜브는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내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 해는 단편소설을 두 편 썼는데 모두 여성인 캐릭터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캐릭터라서 소설의 주인공이 가진 결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각각의 주인공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주인공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라도 각자의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소설에서는 행복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게 좋아서일까, 아니면 이런 글을 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그래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다는 쪽에 가깝다. 


나는 내가 만든 주인공들이 어느 부분은 나와 닮았고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만든 인물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지점을 보고 그 지점을 본 캐릭터가 내게 이건 이렇기 때문에 이거야 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달, 나는 퇴고를 하면서 그 캐릭터들에게 말을 걸어보는 상상을 했다. 지독하게 어려운 상황에 놓인 캐릭터들이 나를 미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행복을 향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런 망상은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끝을 내었다. 나는 여전히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고, 단조로운 주말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니까.


다시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행복은 여전히 없다고 믿지만,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진 않다. 아주 어쩌면 내년엔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담으면서 올해도 수고했다는 말을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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