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한 마라톤대회는 연습했을 때 우려와는 달리 완주를 했다. 하프마라톤은 2019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 내 기억으로는 2시간 10분대 정도에 완주를 해서 아주 잘만하면 2시간 안에도 들어올 수 있겠다 정도로 목표를 상향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페이스는 지금은 꿈도 못 꿀 5:30 정도였는데, 기록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2019년은 내겐 짧은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날 달리기는 처음부터 위기가 있었다. 아래쪽 배 통증이었다. 갑작스레 달려서였을까, 아님 직 전 먹었던 에너지젤 때문이었을까, 한 번도 없었던 통증이라 처음부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달렸다. 다행히 5km 지점부터는 통증이 없어졌는데, 아 이래서 사전에 달리기로 예열하는구나 싶었다. 다음부턴 출발 직전 예열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10km까지는 무난했지만, 늘 그렇듯 13km부터 한계가 찾아왔다. 그 이후 제정신은 아니었고, 포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소설을 쓸 때 첫 구상부터 마지막 구상까지 하고 나면 써야 할 순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시작이 어려운 건, 시작을 하고 나면 끝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상 자체가 거의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편한데, 간혹 이 부분은 달라져야겠다, 이 부분은 순서를 변경해야겠다고 기존의 구상을 변경할 때가 생긴다. 사실 소설을 쓰면서 혼자 재밌는 포인트는 이 지점인 듯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적용시키는 것 말이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토브리그에서 백단장은 해왔던 것을 하면서 하지 않았던 것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살짝 바꿔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해온 것을 한다로 말하고 싶다.
한계가 온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달리는 것이었고, 이 전에 달렸던 17km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회 코스 안엔 급수대도 많았고, 바나나와 초코파이를 주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응원도 있었다. 간식은 다 먹어야 했지만, 뛰다가 탈이 날 수 있으니 한 입씩만 먹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청계천은 생각보다 길고 끝나지 않는 길 같았다. 어느새 대회는 컷오프시간이 지나, 도로통제가 풀렸고 막바지에 다다라선 인도로 달렸다. 컷오프는 절망감을 주지만 그럼에도 하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완주를 목표로 달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동질감은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걷다가 다시 달리기.
10월의 소설의 첫 구상은 여자 주인공이 혼자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나중에서야 도착하는 남자를 보고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여자와 남자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바꿨다. 마지막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이름을 불러야 했기 때문인데,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고, 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코스가 끝난 후 왼쪽으로 돌았다. 도는 순간에도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완주지점이 보였다. 완주지점을 보자마자 이 길고 지루했던 달리기가 끝이 난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더 달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정말 한계였을까? 분명한 건 정말 한계가 왔고, 나는 다시 2시간 11분 이내 기록을 위해서 다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