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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꽃 Mar 15. 2024

My Little Sunshine

난 그늘이 되어 네 옆에 있을게

안녕 H야. 언니야. 매번 별명 아니면 꼬박꼬박 성까지 붙여 세글자로 부르다가 이름만 부르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너에게 편지 쓰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더더욱 그런 듯 해. 2021년 여름, 서울에서 지금 집으로 이사 왔을 때 편지를 써보려 했는데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내게 닥친 일을 내 안에서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기도 했어. 그런데 벌써 2년이 지났다니.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삶에 변화가 많았기 때문일까? 2년 전 내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면 벌써 어색해. 키보드를 두드리다 문득 궁금해서 그때 사진을 봤는데 정말이지 딴 사람 같네. 그때는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을 텐데. 사진 속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웃음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기가 어렵듯이 그때의 나 역시 지금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거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었지. 



    

올 초 번역한 책 중 하나의 주제가 모녀 관계였는데 모녀 관계가 못지않게 자매 관계의 역동도 대단히 복잡하고 많은 문제가 얽혀 있지 않나 생각했어. 다른 자매는 몰라도 우리는 그랬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대했는지 잘 모르겠어. 적당히 귀여워하고 적당히 짓궂은 장난도 치고 적당히 질투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사춘기가 시작되고 자아가 확립되어가면서 내게 네 존재는 편치 않았던 것 같아. 항상 네가 부러웠거든. 싹싹하고 쾌활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 특히 어른들 앞에서 살갑게 애교도 부리고, 너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면서 공기도 환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빛나는 너와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비교해가며 네가 얄밉기도 하고 내가 밉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었어. 열등감이었지. 외모도 성격도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집에서 칭찬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공부뿐이구나, 하고 말이야. 다행스럽게도 열등감의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공부가 체질에 맞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나를 진짜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우리 집에 없다고.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참 긴 시간 동안 이 덫에 빠져 살았어. 물론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게 처음 손을 내밀어준 게 너였고.     








우리가 둘 다 대학생이 되면서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로의 입장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 동네 맥줏집에서 네가 한 말을 기억해. “엄마가 언니를 얼마나 생각하는 줄 알아?” 앞서 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부모의 진정한 사랑? 잘 모르겠다. 공부 아니었음 부모님이 날 쳐다보기나 했을까. 그래서 네가 한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 언제나 미운 오리 새끼는 나였고, 항상 넌 귀염 받는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네가 나를 부러워했고 자신은 뭘 해도 가족들이 미덥지 않아 하는 태도가 속상했다고. 지금도 엄마랑 이야기하면 꼭 언니에 대해서 걱정하고 묻는다고. 엄마가 날 생각한다는 것보다 네가 날 부러워했다는 말에 더 충격받았던 것으로 기억해. 20대의 난 자존감은 바닥에 자존심만 내세우는 미련하고 미성숙한 사람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감 좀 가져. 언니 정도면 괜찮아. 멋있어”라고 등 두드려준 사람이 너였어. 내가 언니라고 불리긴 하지만 오히려 언니다운 네 모습에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 물론 지금도 그렇고.




우리가 같이 서교동에 살았을 때도 많은 일이 있었지. 도서관 같은 분위기에 정시 퇴근이 (그나마) 보장되는 출판사와 근무 시간도 들쭉날쭉한데다 회식에 회식, 술에 술을 거듭하는 드라마 제작사. 어쩜 우리는 하는 일이 달라도 이렇게나 다를까. 서교동에서의 무수한 사건 중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를 꼽자면 네가 단골집이라고 데려갔던 망원동의 한 식당에서 이야기 나눴던 순간일 거야. 번아웃에 우울 증세까지 겹쳐 병원에 다니는 사실을 가족 중 처음으로 네게 털어놓았고, 덧붙여 술기운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말까지 무심코 꺼내 버렸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게 참다 참다 터져 나온 ‘제발 나 좀 도와달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음을 알지만, 그땐 말하고도 아차 싶었어.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괜한 이야기를 해버렸다고 말이야. 그런데 네가 눈물을 보이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몰랐다고, 내가 너무 바빠 언니랑 이야기할 시간도 만들지 못하고 잘 챙기지도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어릴 적 주위를 환하게 밝히던 네가 떠올랐고 눈에선 계속 눈물이 쏟아졌고, 여전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삶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 이 세상에, 이곳에, 내 옆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오랫동안 허우적대던 덫에서 빠져나온 것도, 오롯이 내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혼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네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야. 사람은 참 신기한 게 혼자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은 초라하고 무력한 순간이라도 딱 한 명, 내 편이 되어 줄 단 한 명만 있으면 어마어마한 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어.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살아갈 만큼. 앞으로 외로울 땐 어쩔 거냐는 걱정을 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나. “나한테는 H랑 J만 있으면 돼. 그 두 명만 있으면 충분해.” 무려 두 사람이 내 편에 있고 그중 한 명이 동생이라니. 보기 드문 축복이 아닐까.     




돌이켜보니 언니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받기만 한 것 같아 조금 머쓱해지네. 이제는 친구지 뭐. 너에게 품었던 열등감을 다 극복했느냐 물으면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 열등감이라는 강한 표현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때로 네가 부럽고 조금은 질투도 나거든. 하지만 그 뒤에 네가 밉다거나 내가 밉다거나 하는 감정이 따라오진 않아. 언니와 동생이라는 틀로 우리 관계를 한정해두고 보면 많은 감정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한때 질투나 부러움조차 ‘언니’라면 가져선 안 되는 감정이라 생각했었거든. 워낙 억누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 말이지.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데 너를 향한 부러움이나 질투심은 아직 처리하기 버겁다고 해야 할까, 불편한 건 사실이야. 그래도 이제는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나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어. 많이 성장했지? 하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봄날의 햇살 같다”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어. 듣자마자 네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봄날의 햇살 같은 너를 보며 나도 햇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되어야지, 노력하면 될 거야, 그렇게 여겼는데 인간이 본성을 억지로 거스르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더라고. 그런데 세상에 햇살만 있을 순 없잖아? 한여름의 뙤약볕을 걷다 만난 그늘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난 봄날의 햇살은 될 수 없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속상하진 않아. 그냥 나는 다른 사람일 뿐인 거지. 대신 내가 줄 수 있는 쉼은 그늘이 주는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그러니 넌 지금처럼 네 모습 그대로 햇살이 되어 줘. 난 그늘이 되어 네 옆에 있을게. 네가 사회라는, 세상이라는 뙤약볕에 지쳤을 때 언제든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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