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계꽃 Mar 15. 2024

I’m fine

우리 포기하지 말자

“꺼야 꺼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자~알 할 거야!”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어떤 멜로디 혹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떠오르신다면 반갑습니다. 저와 동년배이시군요. 매일 아침 7시에 억지로 눈을 떠야만 했던 시절, 거실의 TV 소리가 시계를 대신했다. 아침 뉴스에서 일기예보가 흘러나오면 이제는 씻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꼬맹이들의 “떠들썩! 떠들썩! 들썩! 들썩! 떠들썩! 하나둘셋!” 외침이 들리면 옷 입고 가방을 챙겨 방에서 나와야 한다는 신호였다. 아침드라마를 보기 위해 엄마가 KBS2TV로 채널을 돌리고 “꺼야 꺼야 할 거야~”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이미 지각이었다. 몇십 년이 흘러도 아직 멜로디를 기억할 만큼 후크송으로 손색없는 주제가를 선보인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혼자서도 잘해요”다.    



 

유치원생들에게 건전한 유아 지식과 교육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취학 전 아동들에게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주고 올바른 생활 습관, 기초예절 등을 갖도록 건강한 청소년, 역량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한다.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다. 주제가를 여태껏 외우고 있는 사람답게 어려서부터 나는 (많은 K-장녀들이 그렇듯)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였다. 혼자서도 잘하면 선생님과 어른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혼자서 못하는 또래를 보면 우쭐해했다. 맞아, 난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야.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언제부터였을까, 혼자서도 잘한다는 게 누구의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변질된 시점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쉬운 소리를 하면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혼자 해내는 것에 집착했다. 도움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르는 게 생겨도 질문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혼자 해결하려 했고(이게 대체 무슨 시간 낭비인지), 아파도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을 정도가 되어야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갔다(이건 또 무슨 객기인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불편했다. 부탁을 왜 해? 처음부터 그럴 일을 안 만들면 되잖아. 학교라는 온실은 이런 오만방자함을 강화했다. 결국 도와달라는 말도, 도와주겠다는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른 채 덜컥 성인이 되어 버렸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냈다고 착각하며 20대를 보냈다. 사회생활 초반까지는 이 생각이 어느 정도 먹혔던 것 같다. 조직에서 유능한 신입, 쓸만한 신입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체력도 기력도 아직 팔팔했던 그땐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었고, 능력 있다는 칭찬을 듣는 나 자신에게 취해 있었다. 그런데 진짜 마음 깊은 곳에서도 스스로를 강하고 유능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도망치듯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끝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었다. 나는 내 약점을 끝까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감추고 싶었다.     




세상 끝까지 타인을 속일 순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잘 감추고 있다고 해도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게 지금 당장 나타나진 않더라고 반드시 후폭풍이 따라온다. 유능한 나라는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심히 살았고, 공부했고, 남들만큼 노력도 했는데 어쩐지 모든 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저자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면서도 영원히 편집자라는 그림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어 퇴직금을 털어 TESOL 공부를 했다. 입시 공부가 아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사교육계 최전방으로 뛰어들었지만, 거대한 사회 욕망을 일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도망치듯 교육 출판계로 왔고 역시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음 상태로 겨우 희망의 끈을 붙잡은 것이 번역이었다. 아니 오랜 시간 그렇다고 믿었지만 이제 와 솔직하게 말하건대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붙들어 맨 동아줄은 결혼이었다.     








너무 불안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주변에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미 레드오션인 번역 시장에서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진짜 강한 사람이었다면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때까지 조금 기다려달라 했을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이 먼저 그렇게 말했다. 부담스러우면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가장 용기를 내야 할 타이밍에 가장 비겁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불안을, 두려움을, 불확실성을 그의 안정적인 직장과 연봉,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정감으로 덧칠하고 싶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결혼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결코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할 뿐이었다. 지난한 싸움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사랑도 삶도 실패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2년이 걸렸다. 줄 수 없는 걸 줄 수 있다고 속인 건 상대방이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나는 독립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순간에 회피하기 급급했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나’는 현실의 궂은 면들을 타인에게 떠넘긴 후에 쌓아 올린 허상이었다. 그제야 한 번도 내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져본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교동에서 살 때도 거주 공간 마련이라는 가장 큰 짐은 부모님이 대신 짊어지셨다. 결혼할 때도 생활비는 남편의 벌어오고 나는 살림을 하며 조금 보태면 된다고 여겼다. 결혼은 엄연한 법적 계약 관계다. 상대방의 덕을 보면 나도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는 내조를 잘하는 아내와 (시부모에게) 딸 같은 며느리를 바랐다.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나도 주인공이어야 했다. 아무리 상대가 나를 예뻐해 준다 한들 그림자로 존재할 순 없었다. 주인공으로 살고 싶으면서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 하다니. 비겁하기 짝이 없었다. 삶이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선 외면했던 결핍들을 파헤쳐야 했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날 선 직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실은 기대고 의지하고 싶었다. 어리광도 부리고 약한 소리도 하고 싶었다. 혼자서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큰 만큼 실패할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약점을 똑바로 인지하자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집이 있고 고정 수입이 들어오고 원하는 일을 찾아 하고 있었다면, 그래도 그때 결혼을 원했을까? 처음부터 나는 진짜 내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또 다른 이름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자유와 불안은 늘 한 몸이었다.     








타인에게서 결핍을 채우려는 행동을 그만두겠다고, 내가 나를 보호하고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자 오히려 한 발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기가 수월해졌다. 결핍을 안다는 건 스스로가 약해지기 쉬운 상황을 안다는 뜻이고, 그건 곧 내가 나를 달래는 정확한 방법을 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불안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절실했고, 지금까지의 지지 자원이 그 결과다. 이 지지 자원들은 한 발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핍을 인정하기까지 2년이 걸렸고, 불안을 수용하는 기초 훈련을 하기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 2년은 불안에 잠식당하는 기간을 2주에서 1주로, 1주를 사나흘로 줄이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법이 일어난다. 내가 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일수록 좋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만난 동료 S와 J, 같이 상담 수련을 받는 선배들과 동기들, 그간 묵힌 감정을 정리하고 글로 풀어낼 기회를 주신 2W 매거진과 매달 함께 글로 소통하는 여성 창작자들. 사적인 관계부터 느슨한 공동체까지, 신이 있다면 이 모든 인연이 어떤 시기를 무사히 넘긴 사람에게 주는 행운의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번역과 상담은 모두 새로운 도전이었고 도전이지만, 출발선이 다른 느낌이다. 번역이 인정 욕구의 발현이었다면, 상담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상담을 통해 내담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제 조금 사는 게 괜찮다. 누군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I’m fine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당신도 분명 I’m fine이라고 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포기하지 말자. 최근에 내가 찾은 대답은 이것이다.

이전 08화 앞으로의 날들에도 언제나 너의 편이 되어줄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