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Mar 17. 2020

문제는 해결책과 함께 얘기하는 겁니다

결론 없는 중계형 보고의 피로감

# 문제가 생긴 건 알겠어요. 그래서요?   


고단한 관리자들은 문제만 가져오는 직원들에게 온통 지쳐있습니다. 물론 일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많은 관리자는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가져오는 직원들의 방식 때문에 더 피곤함을 느낍니다.


정말 문.제.만. 가져오거든요.


문제를 설명하는 직원의 입을 초조하게 보고 있자면 어느덧 대화가 끝났습니다. ‘그게 끝? 다음은?’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직원은 오히려 눈을 크게 뜹니다. 직원은 문제 보고를 한 것으로 지금의 자기 역할은 끝, 즉 엔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엔딩 맛집도 이런 엔딩 맛집이 없습니다. 다음 편을 절대 말해주지 않습니다. 상사가 알아서 상상해야 합니다.


상사의 스트레스를 끌어올리는 직원의 이런 전형적인 보고 습관 때문에 저를 붙들고 하소연하는 리더들이 꽤 많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인 20대 후반의 송 대표는 다음 달 베트남 출장 준비로 정신이 없습니다. 회사에 관심을 보인 바이어를 만나러 가거든요. 매출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해결할 중요한 기회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할 자료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던 중에 눈을 들어보니 회사 막내가 책상 앞에 서 있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저, 대표님. 베트남 출장 항공편 예약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날짜에 항공편은 모두 만석이라 자리가 없대요.”

그래서요?”

“네? 그래서라뇨?”

그게 끝이에요?

“네. 여행사 몇 군데 전화해봤는데 다 자리가 없대요.”

“그 날짜만 그런 거예요?”

“아, 그건 모르겠어요. 대표님이 그날만 말씀하셨잖아요.”     


송 대표는 한숨을 푹 쉰 후 막내보고 알겠다고 얘기합니다. 막내는 송 대표 반응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섭니다. 이게 그 무섭다는 세대 차이인 걸까요? 글쎄요, 송 대표도 이제 고작 20대 후반인걸요. 막내와 7살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 문제는 해결책과 함께 얘기하는 겁니다         

A는 안 된다고 합니다. vs. A는 안 되지만 대신 B는 어떠세요?


막내 사원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바로 문제만 얘기하고 끝인 태도입니다. 공교롭게도 출장일 베트남 항공편의 모든 편명이 만석입니다. 이게 문제죠. 하지만 송 대표가 중요한 바이어에게 ‘저,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요. 미팅을 연기하시죠.’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막내 사원처럼 이렇게 문제만 던져주고 돌아서면 당황스럽습니다. 송 대표는 어쩌라는 건가요?


문제가 생겼다면 보고하러 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해결책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해당일에 직항 항공편이 없다면 경유 편은 있는지, 출장 날짜를 다른 날짜로 옮긴다면 갈 수 있는지 등의 대안을 찾아보는 겁니다.


 일 잘하는 사람의 문제 보고법은 이렇습니다.     


“대표님, 베트남 출장 항공편 관련해서 상의드리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날짜에는 하필 모든 비행기 편이 만석이라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셔야 할 것 같아요(문제 보고).

첫 번째는 이틀 먼저 가시는 일정이에요(해결책 ). 전날도 자리가 없거든요. 자리가 가능한 시간대는 총 세 개인데 여기 적어놨어요.

두 번째는 경유로 가시는 일정이에요(해결책 ). 말씀하신 날짜에 출발해서 도착은 가능한데 비행시간이 원래보다 8시간까지 늘어나요. 이것도 출발시각과 도착시각 적어놨어요.”


물론 가장 원하는 방식은 만석이라 불가능하니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송 대표는 막내 사원이 가져온 선택지를 보며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선택할 수도, 아니면 아예 제3의 안을 지시할 수도 있을 테지만요.

이 중에 고르라는 거지? (사진 : 픽사베이)

리더 입장에서는 문제만 던져주고 가는 담당자와 대안을 가져오는 담당자의 차이가 무척이나 크기 마련입니다.


# 문제는 담당자 생각과 함께 얘기하는 겁니다          

A, B, C는 이렇습니다. 자, 이제 고르시죠. vs.
A, B, C는 이렇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A를 추천합니다.


자신의 의견은 절대 내세우지 않고 상황 설명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꼭 뉴스 중계처럼 말입니다. 제가 최근에 만난 그룹 임원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기-승-전-결’식으로 미괄식 보고를 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아예 결론이 안 나온다니까요? 한창 듣고 있다 보면 담당자 말이 끝나요. 그게 끝이야? 물어보면 끝났대요. 두괄식이건 미괄식이건 아예 결론 자체가 없어요. 문제 설명만 하고 끝나요.”     
사진 : 강식당

이런 담당자에게 ‘네 생각은 어떻지?’라며 물어보면 펄쩍 뛰면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많은 상사는 눈이 가늘어지면서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아. 저 자식이 얘기하지 않은, 내가 모르는 무슨 안 좋은 정보가 있나 보다. 저렇게 책임 안 지려고 발뺌하는 걸 보면.’. 그리고는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깐깐하게 시비 걸기 시작합니다. 진실을 고백할 때까지 말입니다.


또는 ‘아, 쟤는 아무 계획이 없구나.’라고 한탄하면서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없는 담당자’가 맡을 만한 품 많이 들고 고생스럽지만, 성과는 하찮은 업무를 주게 됩니다. 두 상황 모두 담당자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문제를 얘기할 때는 담당자 의견도 꼭 덧붙여주세요. 다음의 매직 문장(Magic sentence)만 추가하면 나중에 ‘네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했잖아’라는 원망이나 법적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물론 이건 제 의견입니다. 최종 결정은 ○○님이 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일터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통해 얘기해보겠습니다.              


Case  : 치료 상담을 하는 병원 관계자


“A 시술은 피부 발진과 흉터가 생길 수 있어요. B 시술을 받으면 간 손상 위험이 있고요. 어떤 거로 하시겠어요?”
자, 문 보이시죠? 저 중에서 고르세요. 잘 생각하시고요. (사진 : 픽사베이)

음…. 지금 피부 발진 및 흉터와 간 손상 중에서 골라야 하는 건가요? 확률은 어떻습니까? 발진은 얼마나 심한 발진이고 간 손상은 얼마나 심한 건가요?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합니다. 나중에 부작용이 생겼을 때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말인 건 알지만 너무 불친절한 대화법입니다. 우리보다 전문가시잖아요. 그러니 의견을 말해주세요.     


“(중략) 그런데 20대인 고객님 나이에 간 손상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그래서 보통 B 시술을 추천해 드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만약 B형 간염 보균자시거나 가족력이 있으면 A 시술이 더 낫습니다. 둘 다 안정성 측면은 비슷합니다(담당자 생각). 물론 이건 제 의견이고요, 저희는 ○○님이 하시는 대로 해드릴 겁니다(책임 주체 강조).”     


‘문제 거리’만 던져주는 사람보다 훨씬 듣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출처 : 게비스콘 광고)

일하는 사람의 언어 도구로 '진짜 워라밸'을 얻고 싶으신 분께 추천합니다.

책 바로 가기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이전 04화 성과를 자랑할 때는 해석을 덧붙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