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좌충우돌 멘토링_2』 마흔세 번째 글
“대표님은 뭐가 가장 불안하세요?”
이 한마디에 스타트업 대표의 얼굴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준비해 온 스피치와 발표용 슬라이드가 멈췄다고 해야 할까.
IR 피칭을 준비 중이라며 수십 장의 PPT를 들고 찾아왔지만, 나는 그 어떤 조언도 하지 않고 질문만 던졌다.
“그게… 사실 투자자 앞에서는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진짜는 불안하죠. 다음 달까지 버틸 자금도 빠듯하고…”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질문 하나에 뚝뚝 막혔던 속이 터진 듯, 조직 내 갈등, 지분 문제, 공동창업자의 이탈 위기, 그리고 자기 확신이 점점 흐려지는 요즘의 심경까지… 40분 넘게 쏟아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가끔 아주 짧은 질문을 던졌다.
“그 문제에 대해 팀원들에게는 이야기해보셨어요?”
“공동창업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대표님은 어떤 결정을 하면 가장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세요?”
그가 자리를 떠나기 전 말했다.
“오늘 조언을 들으러 왔는데요… 생각해 보니 멘토님은 단 한 번도 ‘이렇게 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근데 오히려 제 생각이 정리된 것 같아요. 아, 이게 진짜 멘토링이구나 싶네요.”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언은 순간을 메우지만, 질문은 방향을 찾게 하거든요.”
실패한 조언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늘 불확실성과 싸운다.
매일 전략을 바꾸고, 사람을 설득하고, 숫자에 쫓긴다.
이럴 때 가장 흔한 조언은 “지금은 버텨야 할 때야”, “제품보단 시장이 먼저야”, “고객에게 물어봐야지” 같은 진부한 말들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창업자들은 그 말들이 자신에게 진짜 해당하는지, 지금 이 순간의 문제에 적합한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조언은 ‘상황’을 충분히 듣지 않고 나온 ‘패키지형 조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의 힘을 믿는다.
질문은 창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자기 문제를 자기 언어로 설명하게 만든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조금씩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대표님,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뭘까요?”
실제로 한 번은 팀 내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대표가 있었다.
그는 “그 직원을 내보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곧장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 직원을 내보낸다면, 대표님이 얻는 건 뭘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게 되는 건 뭘까요?”
그는 이 질문에 오래 머물렀다.
결국 몇 주 후, 그는 직원을 내보내는 대신 역할을 조정하고, 정기적인 1:1 피드백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멘토를 ‘정답을 아는 사람’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는 정답이 없다.
상황은 늘 바뀌고, 사람은 변수다.
그래서 멘토는 ‘길을 같이 걸어주는 사람’,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멘토링에서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세 가지다.
“이 결정을 내리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 선택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요?”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이 세 가지 질문은 창업자의 내면을 향하게 만든다.
외부의 소음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 그것이 멘토링의 핵심이다.
조언은 잊히지만, 질문은 남는다
나는 자주 듣는다.
“멘토님 그때 하셨던 질문 때문에, 아직도 생각 중이에요.”
“당시에 그 질문이 아니었으면 큰 실수를 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말보다, 질문 하나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빠른 선택의 연속이지만, 때론 잠깐 멈추고 ‘왜’라는 질문 앞에 서는 게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그 창업자가 몇 달 후 내게 말했다.
“제가 멘토님을 기억하는 이유는, 조언이 아니라 질문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 질문들이 아직도 제 노트에 남아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멘토로서 내가 할 일을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좋은 멘토는 조언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사람이다.”
필자: 멘토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