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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임대인 vs. 임차인, 끝없는 줄다리기의 심리

『知彼者 心安也』 열두 번째 글

by 멘토K


부동산 거래 중 가장 오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가 있다. 바로 임대인과 임차인이다.


한쪽은 “조금이라도 더 아껴야 한다”는 계산으로, 다른 한쪽은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계약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 속에는 돈보다 깊은 ‘심리의 전쟁’이 숨어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의 한 상가 건물 2층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젊은 사장은 월세 인상 통보를 받았다.


“요즘 다 어렵잖아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그는 간절히 부탁했지만, 임대인은 단호했다.


“저도 대출 이자 냅니다. 그럼 저보고 손해 보란 말입니까?”


결국 그는 권리금을 포기하고 이사를 택했다. 흥미로운 건, 그 자리에 들어온 새로운 세입자도 몇 달 후 똑같은 이유로 나갔다는 것이다.


결국 빈 점포로 몇 달을 버티다, 임대인은 처음보다 낮은 임대료로 다시 내놓았다.


이 사례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양보할 것이냐’보다 ‘누가 더 자기 입장을 이해받을 것이냐’의 문제다.


임대인은 ‘건물 유지비와 리스크’를 이유로, 임차인은 ‘매출과 생계’를 이유로 내세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둘 다 자신의 고통만 현실로 느끼고 상대의 사정은 이해가 아닌 의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상호 불신 구조’라고 부른다.


한쪽이 손해를 볼까 봐 조심하면, 다른 한쪽은 그걸 ‘기회’로 받아들이는 구조다.


서로의 신뢰를 지키려 하기보다, 먼저 상대를 의심하는 순간 관계는 깨진다.


실제로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되는 사건의 상당수가 “말이 안 통한다”로 시작된다.


법적 분쟁보다 더 많은 건 ‘감정의 싸움’이다. 월세 연체나 보증금 문제도 결국 대화가 단절되면서 불신으로 번진다.


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말이 많다.

“세입자에게 너무 잘해줬더니 나중엔 오히려 권리처럼 생각하더라.”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건물주는 단 한 번도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다. 늘 숫자만 본다.”


서로의 불만은 정반대지만, 본질은 같다.

‘내가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정의 상처다.


경제적 관계지만, 인간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감정이다.


임대차 관계의 성공 여부는 계약서 조항보다 관계의 신뢰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월세를 하루 늦게 냈을 때 임대인이 전화로 다그치는 대신 “사정이 있으셨죠?” 한마디만 해도 상황은 달라진다.


반대로 임대인이 유지비 상승을 이유로 인상을 요청할 때, 임차인이 “요즘 어렵지만, 일정 부분은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면 협상의 문은 열린다.


결국 이 관계의 핵심은 돈보다 태도다.


한 부동산 전문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좋은 임대인은 세입자의 성공을 돕는 사람입니다. 세입자가 잘돼야 임대료도, 건물 가치도 올라가니까요.”


이 말은 진리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좋은 임차인은 임대인의 건물을 함께 관리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깨끗하게 쓰고, 규정을 지키며, 계약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요즘 상가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공생형 임대차’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월세를 받는 구조가 아니라, 매출 연동형 임대료나 공동 마케팅 협력 등 ‘이익을 나누는 모델’이다.


서로의 리스크를 분담하고, 장기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결국 ‘관계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知彼者 心安也.’


상대를 알면 내 마음이 편하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결국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공간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얻는 것이다. 다만 서로의 고통을 ‘계산’이 아닌 ‘이해’로 볼 때 비로소 관계가 단단해진다.


누군가 말한다.

“장사는 사람 장사다.”


임대차도 다르지 않다.

건물과 돈이 아니라, 사람과 신뢰의 관계가 오래가는 계약을 만든다.


계약서에는 법이 있지만, 관계에는 온도가 있다.

그리고 그 온도를 지키는 건 결국 ‘이해의 한마디’다.


그 한마디가 긴 줄다리기를 멈추게 하는 힘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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