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彼者 心安也』 열 일곱번째 글
술은 참 묘한 존재다.
한 잔은 긴장을 풀어주지만, 세 잔이 넘어가면 본색을 드러나게 한다.
직장에서, 거래처 미팅에서, 심지어 동네 모임에서도 술은 사람의 ‘가면’을 걷어내는 마법의 도구처럼 작용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술자리에서 진짜 성격이 보인다.”
한 중견기업의 팀장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의 중엔 늘 조용하고 무표정하던 과장이 술잔이 오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사실 저는 팀장님 보고 좀 답답하다고 생각했어요.”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는 곧 “아, 좋은 의미예요. 추진력이 강하시니까요.”라며 급히 수습했지만 이미 그의 진심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다음 날 출근길, 팀장은 조용히 말했다.
“어제는 그 친구의 속마음을 봤어. 근데 술김이라기보다 그동안 눌러왔던 말이었겠지.”
이렇듯 술은 ‘감정의 해방구’다.
억눌린 감정, 쌓인 스트레스, 말하지 못한 불만이 알코올과 함께 녹아나온다.
문제는 그 감정이 때로는 ‘진심’과 ‘폭력’의 경계선 위에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술은 인간의 ‘억제 기능’을 낮춘다.
즉, 평소에 참았던 감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 지나치게 다정해지고, 또 어떤 사람은 공격적으로 변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는 ‘본래 성향’이 드러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평소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사람ほど, 술자리에서는 반대로 과하게 풀려버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왜 그렇게 달라질까?
그건 결국 자기 표현의 갈증 때문이다.
술은 그들에게 “이제 괜찮아, 말해도 돼”라는 허락을 준다.
그러나 문제는 그 허락이 자기중심적인 착각으로 흐를 때다.
첫째, ‘진심 폭발형’
평소 억눌린 감정을 술로 푸는 사람이다.
“나는 원래 이런 말 안 하는데…”라는 말을 꼭 앞세운다.
하지만 그 뒤엔 평소의 불만, 서운함, 비교의식이 폭발적으로 터진다.
술이 마르기도 전에 ‘인간관계의 불씨’가 남는다.
둘째, ‘과잉 친밀형’
술 한잔에 선을 허물며 갑자기 다가오는 유형이다.
“우리 형동생 하자”, “내가 너 진짜 좋아해.”
순간은 훈훈하지만, 다음 날 냉정히 보면 관계의 속도조절이 무너져 있다.
이들은 술이 준 ‘착각된 친밀감’을 진짜 관계로 오해한다.
셋째, ‘감시자형’
술자리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유형이다.
누가 얼마나 마시는지, 누가 누구에게 예의가 없는지, 그런 걸 은근히 관찰한다.
이들은 술자리조차 ‘조직 내 관계 권력’을 읽는 장으로 여긴다.
“어제 누구는 나한테 인사도 안 하더라”라는 말로, 술의 여운 대신 불편한 긴장만 남긴다.
넷째, ‘감정 무감형’
술을 마셔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감정 기복이 없고, 적당히 대화하다 조용히 빠진다.
이들은 의외로 신뢰를 얻는다.
술자리를 즐기되 휘둘리지 않는 사람, 그게 진짜 어른의 모습이다.
결국 술은 ‘관계의 거울’이다.
술자리에서 드러나는 행동은 평소 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진짜 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술 없이도 웃고, 술이 있어도 싸우지 않는다.
반면 관계가 불안한 사람들은 술로 관계를 증명하려 한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잖아.”
하지만 진짜 솔직함은 술에 기대지 않아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한 거래처 대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거래할 사람을 고를 때 술자리를 꼭 봅니다.
술이 들어가면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거든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술자리를 안 봐도 신뢰할 수 있는 관계, 그게 더 건강한 관계 아닐까.”
술은 결국 관계의 ‘시험대’가 아니라, 관계의 리트머스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색이 변하고, 누군가는 그대로 남는다.
상대를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술자리에서 달라지는 사람을 보고 실망하기보다,
그 사람이 감춰온 ‘진짜 감정’을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술이 만들어낸 말 한마디에 감정이 흔들리는 대신,
“이 사람이 술을 핑계로 꺼낸 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그 순간, 당신은 술보다 깊은 인간관계의 심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술이 아니라, 사람이 관계를 망가뜨리거나 지키는 법이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