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귤

지아의 세상은 우주였다 보다

by 살피

지아의 귤 농장은 중력을 거부하는 듯했다. 사방에 귤이 떠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땅 속 깊이 박혀있었지만, 나뭇잎은 살랑거렸다. 그리고 신기한 건, 이 농장에서 나오면 평범한 지구라는 것이다. 꼭 지아의 세상만 동화 같았다. 10년 전 내가 알던 지아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은 모른다는 것이 지아를 통해 인증되었다.

말도 없고 친구도 없던 지아에게 처음으로 다가간 사람은 나였다. 지아는 혼자 있고 싶은 건지 자꾸 나를 밀쳐냈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지아도 내가 싫은 건 아니었나 보다-라고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지아는 학창 시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행동했다. 공부와 거리가 있었던 나는 지아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해하려 노력했다. 시험이 끝난 날에도 지아는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좋은 대학을 갈 것 같던 지아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제주도로 날아갔다.

난 정말로 지아의 목표는 대학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아는 대학을 포기했다.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나는 나의 하찮은 점수에 맞는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난 입학을 취소하고 재수를 시작했다. 지옥의 문이 열린 셈이다. 지아는 스무 살이 되고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조용하고 차가웠던 고등학생의 지아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몇 시간씩 수다를 떨기도 했고 활동적인 운동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나는 서울, 지아는 제주도에 있어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연락은 자주 했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지아를 화면으로 바라보며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아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비밀 하나 알려줄게. 내가 키우는 귤나무는 우주에서 왔어.”

오랜만에 연락을 하니 지아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말투에서 신난 게 느껴졌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였다. 며칠 뒤 지아가 나에게 보낸 귤 한 박스가 현관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지도 않았다. 누가 주면 먹기는 하지만 내가 찾아서 먹은 적은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귤이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지아는 무려 한 박스나 보내주었다. 언제 다 먹어-라는 생각이 끝없이 늘어졌다. 지아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알려주었다. 귤 장사도 한다는 것이었다. 지아의 귤 농장을 검색해 보니 리뷰가 꽤 달려있었다.

‘하나도 터지지 않고 깨끗하게 왔어요!’

‘다른 귤은 너무 셔서 아이들이 못 먹었는데 여기 귤은 달달해서 아이들도 잘 먹네요.’

‘앞으로 귤은 여기서만 먹어야겠어요. 굿.’

호평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리뷰들을 보며 나도 귤 하나를 까서 내 입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귤은 “별 맛”이었다. 진짜로 “별 맛”. 별난 맛이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그 “별” 말이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별은 먹어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별 맛이다. 환상적인 맛이 내 입을 감싸고 톡톡 튀는 스프링클 같이 입이 즐거워진다. 어쩌면 귤에서 별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귤에 대한 리뷰 중, 스쳐 지나가 신경 쓰지 않았던 리뷰를 다시 찾아보았다.

‘귤 맛이 환상적이네요~ 이런 귤은 처음 맛봅니다. 번창하세요~^^’

이 사람 말이 맞았다. 환상적!

너무나 맛있었지만 귤 한 박스를 보니 아득해졌다. 난 가족들과 같이 재수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들은 지아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우주에서 온 귤이라고. 내 농장에 와보면 왜 우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제주행 비행기표를 샀다. 나는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고, 쉼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비행기는 느릿느릿 하늘 위로 비상하고, 구름 위를 떠다녔다. 창가 쪽에 앉은 나는 그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 사진을 인화해서 지아에게도 보여줄 예정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문득 여행길에 공부를 하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 생각이었지만, 재수라는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겐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비행기는 이미 지상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중 나온 지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너무 반가워!

드디어 지아의 우주 귤 농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려는 지아를 붙잡고 급히 농장으로 갔다. 겉으로 보기에 지아의 귤 농장은 평범했다. 정말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믿을 수 없었다.

“어때? 예쁘지?”

난 지아의 시선을 따라갔다. 놀랍게도 귤은 밤하늘을 머금고 있었다. 별의 껍질을 벗기니 귤락은 별자리를 만들고 있었고, 과즙은 비처럼 내렸다. 귤의 꼭지는 물론 별이었다. 바로 한 입 먹어보았다. 역시나 맛있었고 귤나무의 옆에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지아가 있었다.

아무도 이런 지아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옆에서 본 지아의 인생은 공부가 전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아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사람은 때가 되면 완전히 그 사람만의 세상이 생긴다는 글을 봤던 적이 있다. 지아의 세상은 우주였나 보다. 그 우주 안에서 별빛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귤은 지아만의 독특한 타이틀이 되었다. 나의 세상은 언제 생겨날지 궁금했다. 그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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