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향한 질투는 푸른 것들을 병들게 했다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의 먹구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가 내리는 걸 대비하기 위해 신발장에는 항상 우산꽂이가 있었고, 사람들의 가방에도 작은 우산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장난이라도 되는 듯 비는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점차 익숙해져 갔다. 다른 지역으로 가도 하늘은 바뀌지 않았다. 누군가가 하늘에 연필로 낙서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낡은 지우개를 쓰는 건지 흑연을 지우면 지울수록 하늘의 회색은 더욱 번져갔다. 마을의 곳곳엔 인공 햇빛을 제공하는 가게들도 늘었다. 햇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 자연광은 아니지만 자연광처럼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집에 몇 개 없는 화사한 옷들을 꺼내어 입고 사진 촬영을 했다. 하지만 그 옷들도 곧 색깔을 뺏길 참이었다. 하늘이 회색으로 물들고 사람들의 피부도 색을 잃었다. 빨래를 하면 할수록 물 빠짐이 심했다. 세상에 남아있는 색이라곤 눈의 홍채가 유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채의 색이 어두웠지만 아주 희귀하게 색이 또렷한 홍채들이 있었다. 온통 흑백인 공간에서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의 홍채들은 빛을 냈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로 쏠렸다. 그리고 그 홍채들은 세상에서 소외받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흑백 세상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색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다채로웠던 세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홍채의 색이 또렷한 사람 중엔 나도 있었다. 파란빛의 눈은 마치 푸른 하늘을 연상시켰다. 나와 친한 이들은 내 눈을 보고 그리운 시절을 추억했지만 심술이 난 이들은 내 눈을 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를 멀리하는 시선들엔 익숙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고 나서도 그런 시선을 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내가 그런 시선을 받는 이유가 정당화된 것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 세상 잘못이라고 탓할 수 있었다. 나는 거추장스럽게 무언가를 걸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당당하게 눈을 드러내고 다녔다. 홍채 색이 다르다고 다른 세상을 보는 게 아닌데. 홍채 색이 검정이라고 선글라스를 낀 효과를 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내가 푸른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믿는 걸까?
푸른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정말 푸른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푸른 숲. 우리는 자연 앞에 ‘푸른’을 붙여 신성하게 만들어 버린다. 감히 더럽히지 못하도록,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도록. 이렇게 푸르던 세상에 먼지가 쌓여 더 이상 푸르름이 보이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직 빛을 그리워했다. 멀리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홍채의 색을 구분할 때부터 그들은 모두가 같아지길 원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감출 수 없는 마음이었다. 못된 인간들의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졌을 거라는 사실이 허무하기도 했다. 남이 잘되는 꼴 못 봐서, 항상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하니까. 같잖은 변명들은 세상을 더욱 검게 칠해버렸다. 이제 세상엔 백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날이 개기일식이었다.
서로를 향한 질투는 푸른 것들을 병들게 했다. 개개인의 성격, 특색, 겉모습까지 재단하려 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관심도 없는 타인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교하고 농락하며 헐뜯고 미워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 무얼 위해 과거와 싸우는가. 푸르던 지구를 기억하지 않으면서 푸르던 지구를 추억했다. 하늘은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하려는지 비를 이곳으로 떨어뜨렸다. 비가 내렸다. 며칠 동안 비는 멈추지 않았다. 먹구름은 드디어 제 역할을 수행했다. 이 비가 그치면 다시 푸르던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푸른색의 눈을 드러내고 비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정말 푸른 하늘이 보였다.
저 높고 어두운 먹구름을 쳐다볼 때면 위압감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땅에 내려앉아 모조리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온 세상이 스노우볼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우주가 보이지 않아 숨이 막혀버렸다. 정작 숨을 쉬지 못하는 곳은 우주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 그 자리에 서서 모두가 맞춘 듯 비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야를 방해하던 모자를 벗은 사람도 꽤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그 색들은 빛났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빛이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평생 자신의 결핍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푸른 세상에서 낙오되었다. 그들에겐 흑백이 어울렸다. 아무것도 티 내지 말 것. 그러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우리들은 다시금 푸른 하늘을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