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안에 사람이 있어요

그다음 날도, 그다음... 어쩌면 평생. 내가 죽기 전까지?

by 살피

길을 걷다 보면 도로 위, 그러니까 아스팔트 안에 사람이 갇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자동차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그 사람이 신경 쓰인다. 저번에는 경찰에 신고도 해보았는데 여기는 사람을 묻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며 그냥 가버리기도 했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서 그저 편의상 말만 늘어놓았다.

그 시체는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는다.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그저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기만 한다. 난 집으로 돌아가 일기를 작성했다.

-오늘도 그를 봤어. 아직도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더라? 아마 내일도 내가 그를 피할 순 없을 거야. 그다음 날도, 그다음... 어쩌면 평생. 내가 죽기 전까지?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한숨을 쉬고 일기장을 덮었다.

아스팔트 안에 있는 사람 같이 내 인생도 무기력하다. 물론 그 사람은 죽었으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움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나도 그 사람처럼 되면 어쩌나 걱정이 들 때가 있지만 사람에게 죽음은 쉽게 다가오지 못하니 이상한 안심이라도 할 수 있다.

멍하니 바닥에 누워서 불도 켜지지 않은 천장을 바라본다. 그때, 전구가 깨지며 빛이 발광했다. 전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깨진 조각이 내 다리에 박혔다. 따갑진 않았고, 이제 이것을 핑계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이 생겨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몇 주를 가만히 있었다. 깨진 전구와 함께.

박힌 전구 조각을 빼내니 피가 흘러 지혈해야 했다. 하지만 집엔 응급처치 도구도 없고 그 작은 밴드조차 없어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지혈했다. 춥긴 했지만 어쩔 수 없어 그러려니 했다.

이상하게도 낮이 밝은 날엔 목을 매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분명 집 비밀번호는 나만 알고 있는데, 목을 맨 사람이 우리 집 안에 있다. 천장에서부터 공중으로 떠 있는 사람도 물론 표정이 없었다.

이 사람이 죽진 않았는지 자연스레 움직이기도 했다. 목이 매달려 흔들거리는 건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본 건 아마 반대편의 집주인일지도 몰랐다.

촛불이 타고, 촛농이 흐르고, 불은 번지고, 우리 집은 타닥타닥 타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내 상상이다. 난 죽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밖에 나갈 때마다 보이는 아스팔트 속 사람처럼 죽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재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현실감 넘치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문밖에는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천장이 날 반겨준다. 조금은 찡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난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옆에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 어른들만 있었을 뿐이다. 어리둥절한 채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자, 의사와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를 보곤 놀라는 기색 없이 말을 시작했다.

“네, 환자분. 불이 난 자택에서 구출되셨고요,....”

의사가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나를 본 의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에게 질문했다.

“기억이 안 나시나요?”

“아뇨.. 불.. 난 건 아는데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는데요..”

멍청하게 멍청한 답을 내놓은 나는 내가 봐도 부끄러웠다. 며칠 동안 입도 열지 않아서 말하는 법을 까먹었나 싶었는데 그래도 더듬더듬 머릿속에 있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나는 의사를 제대로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전해서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지금이 식사 시간인지 음식이 든 식판을 가져다주곤 의사는 이따 다시 온다고 했다. 병원 밥은 꽤 맛있었다. 영양소가 골고루 어우러진 식단은 처음 먹어보는 조화로움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창밖에서 해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의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집에 불이 난 건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 상담을 추천해 드려요.”

갑자기 나보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하지를 않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정신과 상담은 아무래도 익숙했다.

/

내 앞엔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난 방금 깨어났는데 내가 더듬더듬 말하고 있었다.

병실에서의 지금까지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난 절망하며 하고 있던 말을 계속했다.

“... 하고 그 속에 사람이 보여요.. 근데 아무도 안 보인다고.. 경찰도..”

괜히 눈물이 흘렀다. 슬쩍 앞을 봤는데 의사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나요?”

“죽어있는데.. 죽어있고.. 온통 검은색.. 표정 없고 날 쳐다봐요.”

의사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명쾌하단 듯이 답을 내놓았다.

“유혜님이 말씀하신 아스팔트 안 사람은, 그림자 같아요.”

뭐?

“아스팔트에 묻혀 있는 사람을 손으로 만져보면 아스팔트의 촉감밖에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아..

“앞으로 사람이 묻혀 있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난 아스팔트를 만져보았다.

평생 나를 쫓아다닌 죽은 사람을, 그리고 집에서 목을 매단 사람을..

아스팔트를 만져보니 정말 까슬까슬한 바닥만 만져졌다.

저기 아주 환한 불빛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

-아마 이건 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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