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버릇

죽음에 대한 입버릇은 이젠 너무나 익숙해졌다

by 살피

이 정도면 병 아니냐? 속으로 말을 삼켰다. 쓰레기장에 쓰레기처럼 살고 있는 내가 감히 할 말은 아니었다. 진짜 쓰레기장에서 사는 건 아니고, 내 더러운 방 꼬락서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게으른 몸뚱어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일어나기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기로 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아무것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부터 나 혼자만의 규칙으로 정해놓았다. 내일은 주말이니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핸드폰 보는 건 나에게 오락이 아니고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힐링이 아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에 무늬는 없지만 자잘한 주름들을 눈동자를 굴려 따라갔다. 이 김에 눈 운동도 좀 하고. 그러다 문득 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건 주기적으로 드는 생각이니 우울해지진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싶지만 방정맞은 내 입은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목소리를 공기 중으로 보내버렸다. 내 얼굴 위로 떠다니는 기분 나쁜 말은 한순간에 이곳을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죽어버릴 거야! 상대도 없이 혼자 화를 내다보면 내가 뭐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든다. 나이를 이만큼 먹었는데 아직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할 것도 없는데 죽을까. 씻기 귀찮은데 죽을까. 내 인생 왜 이러지. 죽어버려야겠다. 죽음에 대한 입버릇은 이젠 너무나 익숙해졌다. 고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에게 무서운 게 아니었다. 너무 가벼운 말이 되어버렸다. 진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왜, 어르신들이 일어날 때나 무거운 걸 들 때 아이고-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냥 그것뿐인데 난 이게 오해로 번질 줄은 전혀 몰랐다. 얼마 전에 요란스럽게 이사 온 옆집. 옆집의 그 여자는 당황스럽도록 나를 괴롭혔다. 틈만 나면 초인종을 눌러댔다. 왜요? 퉁명스럽게 요건을 물었다. 그러면 여자는 “죽을 생각 하는 거 아니죠?” 이랬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하루 종일 죽겠다고 소리치는 사람한테 정말 죽을 거냐 물어보다니. 정말 죽을 생각이었다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목숨을 끊었겠지.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이런 귀찮은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미치겠네. 말도 함부로 못 하겠어. 난 여자를 돌려보냈다. 설마 내 뒤에 있던 쓰레기 산을 본 건 아니겠지. 그러면 더욱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고작 옆집 사람에게 오해받지 않으려고 집을 치워야 한다고? 억울해 죽겠네.

제가 오지랖이 좀 넓어요. 여자는 항상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나는, 전 그 오지랖 안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여자는 역으로 자기가 당황스럽다는 듯 어이없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튼 전 사람이 죽는 거 못 보니까 죽지 마세요. 정말 어이없게도 여자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떠나갔다. 그래도 옆집인데. 여자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까지 들렸다. 어차피 옆집인데? 복도만 나가면 마주칠 수 있는데 열 발자국 걷는 수고로움까지 보여야 했을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난 쓰레기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여자 보라고 치우는 건 아니고 그냥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치우는 거라고! 또 혼자 여자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는 걸 인정 못한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아침 일찍 외출하는 날 의식적으로 옆집을 쳐다봤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불이 꺼져 있는 건가?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창문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뭐라고 참. 옆집을 신경 쓰느니 마느니. 투박한 신발을 끌며 복도를 걸었다. 너무 졸려서 죽.. 까지 말했을 때 알아차렸다. 나 정말 버릇처럼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구나. 말이 씨가 된다고. 그 여자가 나에게 죽음이 피어나지 않게 막아준 걸까? 나는 그저 귀찮아서 또는 힘들어서 방치해 두었던 스스로 돌보는 일을 되새겼다. 오늘은 집 가서 씻고, 그리고 음식 배달시키지 말고, 또 죽음을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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