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스파티필름

난 시멘트의 잡초로, 넌 온실 속 화초로 자라 버렸다

by 살피

창문을 열고, 온도를 확인한다. 항상 적정 온도를 유지해 주어야 살 수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은 스파티필름. 시들시들 고개를 숙이지 않게 살펴주어야 하는 꽤 피곤한 일을 바란다. 스파티필름을 키우게 된 건 불과 3개월 전부터다. 엄마가 뺑소니로 인해 머리 한쪽이 갈려 나가 사망 판정을 받은 후, 나는 엄마 집에 있던 스파티필름을 죽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엄마가 아끼던 아이였기에 난 그 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않아서 키우는 건 편했지만 수시로 생명을 확인해야 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주 5일. 나는 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에 돌아올 수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마주하는 스파티필름은 가만히 숨 쉬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스파티필름을 바라볼 때면 엄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데려왔을 당시에도 윤기가 나고 보기 좋았다. 좋은 영양제란 영양제는 모두 때려 박은 듯했고 햇빛을 잘 받아 싱싱했다. 엄마가 얼마나 정성스레 키웠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엄마를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가 생생하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갓난애였던 나는 엄마가 나를 안아주기를 바라며 손을 뻗었다. 엄마는 나에게 분유를 물려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우울한 기억은 인생에서 지워진다. 그렇게 나는 갓난애의 기억과 비로소 엄마에게서 벗어났을 때의 기억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스파티필름은 지루한 내 인생에 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긴장감 있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은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책임져 본 경험이 없다. 엄마와 같이 살 때도 반려동물을 기르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도 집 안에 생명을 들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나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는데 스파티필름을 자기 자식보다 더 아끼는 게 미웠다. 스파티필름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자세히 말하면 나보다 5살쯤 어렸다. 엄마가 나를 방치했던 것도 5살쯤이었다. 자아가 형성되고 스스로 깊은 생각을 하게 됐을 때부터 나는 내 존재의 불합리를 깨달았다. 엄마의 불륜으로 나는 태어났다.

내가 걷고, 말을 하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엄마가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 시간의 주인공은 스파티필름이었다. 불륜이 아닌 원래 엄마와 결혼했던 남자의 아이였다. 아직도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내 이름은 같았기에 알 필요도 없었다. 엄마가 혹여나 다른 집에서 이름을 실수하지 않으려고 같은 이름으로 지었다는 걸 안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식물에 걸맞은 이름을 손수 찾았다. 그게 스파티필름이었다. 푸릇한 이파리에 하얀 꽃이 피어나는 스파티필름은 나의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나’인 ‘너’가 불쌍했다. 난 시멘트의 잡초로, 넌 온실 속 화초로 자라 버렸다.

전혀 그 아이를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가족이라기엔 엄마의 피로 연결되어 있는 남이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엄마에겐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그 옆에 움직이지 않지만 숨을 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그 아이는 엄마와 드라이브하다가 뺑소니를 당했다고 했다. 사고가 난 후 며칠 동안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 뒤로 그 아이의 집은 내 집이 되었다. 몸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물로 씻기고,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둔 작은 방에 이불을 한 겹 깔아 그 아이를 눕혔다. 겨울이었지만 땀이 흐르는 게 멈추지 않았다. 이 아이가 눈을 뜨지 못한 채로 내 앞에 누워있는 게 믿기지 않아 한참을 바라봤다. 시체 같은데 생기가 있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조금은 징그러웠다.

출근하고 기계처럼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을 때도 집에 있는 스파티필름이 생각났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 동안 눈을 뜨고 살아 움직이진 않을까? 내가 집에 돌아오면 죽은 척을 하는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작은 방을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게 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처음엔 내 집에 다른 누군가가 숨죽이고 있다는 게 기괴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니 이것도 익숙해져 갔다. 씻기거나 영양분을 공급해 줄 때 빼곤 방문을 닫아놓았었는데 이젠 활짝 열어놓는다. 창문을 열어 햇볕을 쬐게 하니 스파티필름은 제법 늦잠을 자는 아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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