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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 3차 세계 대전

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by 라이언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의 감정에 내가 격앙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감정선이 무너져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종종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상처 입히게 될 때, 본능적으로 소리로 감정을 표출하며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그 방어기제가 발동된 뒤, 그 흐름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과거처럼 그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아차’라는 마음이 들며 나의 반응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마음의 변화를 통해, 나는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싸움의 순간마다 나는 나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고, 그 근거를 토대로 자신을 보호하려 애쓴다. 두뇌는 최대 출력을 발휘해 나를 지키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내 부족함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나를 드러낸 그 순간, 짜증이 밀려오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부끄러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문제가 사실은 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는 걸 깨달았다.


논어에서 “군자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자아를 존중하지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君子自惜其身,尊其心,敢於認錯)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립이 있을 때, 나는 내 입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부분에서 미숙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내 말을 돌이킬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상황을 정리하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마찰에서 항상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도, 상대방에게 배려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를 이해하고, 상대 역시 나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직장에서는 동료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기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타인의 잘못을 바로잡기 전에 먼저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 보자.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감정의 충돌과 갈등은 결국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의 감정이 격해지며 싸움을 일으킬 때, 그 싸움이 결국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국가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미국 간의 협상에서, 전쟁이 끝날 때마다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지, 전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전쟁의 끝이 국민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 전쟁은 그 자체로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그 피해는 오랜 시간 동안 회복되지 않는다.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갈등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싸움을 피하는 지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싸움은 피할 수 없을 때, 그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가장 현명한 싸움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

싸움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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