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4시 30분을 위하여

by PHILOPHYSIS

아침 일찍, 시간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듯 해야 할 것을 해치우기도 하지만, 대체로 고요하여 깨어 있음을 즐겁게 음미한다. 남은 잠의 흔적만 살짝 떨쳐 내면, 머리는 하루 중 가장 맑게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다. 진득하게 절로 몰입이 되는 귀한 시간.

그 와중에도 시간은 꾸준히 흘러 점심쯤, 나는 아침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가볍게 먹는다. 이때부터는 보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들로 인해 아주 약간은 산만해진다. 여전히 하루의 중심을 살아간다는 감각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때로는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사람은 그러한 의욕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그렇게 뭔가를 할 의욕에 휩싸인 시간은 휘 지나가고, 피로를 느끼며 지금까지의 하루를 문득 평가하게 된다. 의욕과 흥분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어떤 일은 쓸데없어 보여 스스로에게 의심도 품게 된다. 어떤 생각은 터무니없기까지 하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잠시 멈춤. 마음의 동력도 차갑게 식어버린 4시 30분. 난 꼭 그 시간에 그러한 감각을 느끼도록 바이오리듬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그 시간이 오기 전에 해치워야 한다며 더 서두르기도 했다. 그 시간의 내가 두려운 것처럼. 그러나 그 수많은 오고 감의 반복으로 인해 지금은 "어, 왔구나" 하게 된다.


나에게만큼은 이런 순환이 하나의 연속된 단위처럼 존재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n 년마다,

어떤 일의 시작과 중간 무렵,

마음속 의욕 그 자체의 리듬,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마저.


각각의 단위가 마치 완전히 다른 순환인 양 반복된다.


그 모든 단위 속 4시 30분의 감각은 꽤 무겁다. 아침 일찍의 그 자신감 충만한 자아는 온데간데없다. 내가 가진 그 순환의 단위를 알지 못했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루에도 혹은 몇 개월/몇 년 사이에도 너무나 다른 나를 보게 되니까. 그 변덕과 불안정함에 자존감마저 낮아지는 악순환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있어 폭주 기관차처럼 살 수는 없는 법. 그런 삶의 방식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닳고 닳다 '치이익- 칙' 하며 끝내 레일을 탈주하는 삶은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대신 높고 낮음, 많고 적음, 세고 약함, 휘고 곧음... 그 반복되는 사이클을 자연의 순리라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깊은 평온을 되찾는다. "어, 왔구나" 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의 평온이 순환의 고리를 더 부드럽게 하는 것을 알아 간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한 번은 그대로 푹 퍼져 멍하니 시계만 바라봤다. 그날은 유독 정신의 힘을 소진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역시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님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하던 걸 꾸역꾸역 하기? 그것 역시, 나는 내면의 동력, 예컨대 의욕 같은 것으로부터 움직이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역시나 몸을 더 힘차게, 활발히 사용하는 것. 마치 태엽을 감듯, 나는 더 격정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몸을 쓰는 일을 그 시간에 구태여 한다. 그럼 다시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붉게 올라온다.


나는 서서히 그러한 사이클, 나만의 단위를 존중하게 됐다. 나름 나와 잘 지내며 터득한 요령이랄까. 그리고 전체 인생 중 4시 30분은 어디쯤일까 생각해 본다. 그 시간이 온다고 하면 이제는 기꺼이 반겨줄 것 같다.


그 무렵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느끼는 무기력, 노곤함, 허무주의와 회의감이 네 내면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그저 지금은 4시 30분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때쯤 또 다른 요령을 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써보라고. 춤을 추든, 뛰든, 무언가를 만들든, 청소를 하든, 육신의 태엽을 있는 힘껏 돌려보자고. 과거에 회의하지 말고, 미래에 불안할 것도 없다고. 차라리 더 힘을 빼보는 것도 좋겠다고. 그래, 그게 더 좋겠다고.


그렇게 나는 나에게 더 다정해지는 법을 익혀간다. 일단 나라는 존재에 친절해지면, 타인에게도 더 따뜻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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