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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힐데 Dec 11. 2022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언젠가 떠날 귀한 손님을 위해 사랑을 내어주는 것

2022년 12월 11일, 사제서품을 받은지 이틀된 신부님의 첫미사를 다녀왔다. 신부님의 이름은 ‘빛’을 뜻하는 ‘루멘’이었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기를 겪고 부모님의 품을 떠나 홀로 서기까지, 그의 인생을 짧게나마 훔쳐 본 느낌이었다. 은사님, 동료 신부님들, 후배 신학생들, 부모님, 가족분들이 각자 나눈 루멘 신부님과의 일화는 들으면 들을수록 한 인간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나는 루멘 신부님을 오늘 처음 뵈었다. 오빠의 친구이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전해 들은게 있긴하지만, 그걸로 내가 한 사람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신부님 지인들 각자가 나누어 주신 그와의 추억들은 나로 하여금 루멘의 빛을 보게 했다.

 

순수, 천방지축, 배려, 겸손, 따뜻함, 성실



신부님을 설명하던 이 모든 단어들이 결국 세상의 ‘빛’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활짝 웃고 계신 신부님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분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실까.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과연 어떤걸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부모와 자식도 결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운명이 있다. 떠나 보내고 떠나가야 한다는 것.


물론 사제가 되거나 수녀가 되는 ‘성소’의 길을 걷는 분들은 서품식, 서원식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된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언젠가는 부모와 자식은 독립하게 된다.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천주교에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첫영성체’를 한다. 언젠가 우리 본당 신부님께서 첫영성체 예식이 있던 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부모가 평생토록 자녀의 삶을 보호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인생 동안 평생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할 것은 오직 ‘말씀’ 뿐입니다.
부모님들께서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나의 소유물, 나의 자식이 아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첫미사의 주인공이 신부님, 그리고 신부님을 불러주신 하느님이셨던 것이 맞지만, 오히려 내 눈에는 하느님께서 루멘 신부님을 키워주신 그의 부모님께 열어주시는 성대한 잔치로 보였다.

오늘 내가 본 것은 부부가 맺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약 20년, 그리고 그 후로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 자그마치 11년의 시간 동안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주신 부모님을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성대한 잔치였다.

나는 그곳에서 하느님의 기쁨을 보았다.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다. 하느님께서 부모님께 “장하다, 대견하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우연히 앉은 자리가 부모님의 뒷모습이 보이는 자리였는데, 그들 위로 드리운 하느님의 크고 넓은 품의 후광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좋은 부모란, ‘내 인생에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자녀는 부모를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예상하지 못했던 덕분에 오히려 인생에 있어 더욱 큰 축복이 되었을 것이다. 자녀는 갑자기 찾아와 뜻밖의 기쁨을 안겨 준 귀한 손님이었다.

손님은 언젠가 떠난다.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해 쉬어가는 님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 나의 품에서 떠나간다 고백하는 것은 머무를만큼 머무르고, 쉴만큼 쉬어 이제야 비로소 그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자녀를 내 인생에 찾아온 ‘귀한 손님’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한없이 큰 은혜를 베풀어준 은인과 같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흔쾌히 마음의 안방을 내어준 은인. 내가 약할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의 울타리를 사랑으로 만들어주었던 은인 말이다.


떠나보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아는 것.
그것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내 인생에 찾아온 귀한 손님께서 무탈히 떠나실 수 있도록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


이것이 ‘좋은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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