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농사를 지어 먹는 것들이 많아지고, 우리의 밥상이 텃밭에서 그대로 따온 채소로 채워질수록 플라스틱 통과 비닐 포장된 식재료를 사서 먹는 현실이 점차 부자연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마트에서는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여보,샐러드 파스타 만들려면 쌈 채소 사야 해."
"아, 우리 텃밭에 있는데! 쌈 채소 얼마야?"
"100그램에 2,500원. 이만큼 들었는데 진짜 비싸다."
"그러네. 씨앗 한 줌 뿌리면 몇 달 지겹도록 먹을 수 있는데."
농사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내게 쌈 채소는 돈 주고 사 먹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한 봉지에 2,500원은 아주 저렴하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텃밭 수확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까워서 지갑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5평짜리 작은 텃밭에서도 우리 부부가 먹을 작물이 충분히 자란다. 충분함을 넘어 때로는 차고 넘쳐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때도 많다. 밭 크기를 10평으로 늘린다면 아마 겨울을 제외하고는 (저장 기능을 따지면 겨울까지도) 한 해 동안 두 사람이 먹을 채소와 구황작물의 대부분을 온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자급자족이라는 것이 꼭 귀농하고 귀촌해야만 이룰 수 있는 소망이 아니겠구나 싶다. 도시에서도 추운히 우리가 먹을 만큼의 푸성귀와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다. 물론 텃밭을 가꿀 만한 주말 농장이나 공공텃밭, 아파트 텃밭 등을 분양 받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시가노가 에너지도 꽤 써야 하지만. 텃밭은 내게 고된 노동이라기보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사치이자 힐링이기에 되레 좋다.
귀촌하기 전 작은 실험으로 시작한 5평짜리 작은 텃밭은 이제 도시에서도 사계절 건강한 농작물을 내 손으로 직접 재배해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재료를 줄이고, 직접 길러서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텃밭의 변화를 도모한다. 자주 먹고 즐겨 먹고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농작물 위주로 가꾼다.
가을에 수확한 작물들을 겨울철 저장하는 방식과 요리법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시도하고 배워나가고 있는데, 경험과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 충분히 만족스러운 자급자족을 구현할 수 있으리라.
나의 텃밭 라이프에 많은 영감을 준 책인 <조화로운 삶>의 저자 니어링 부부가 몇 년에 걸쳐 실험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며 그들만의 자급자족적인 삶을 성장시켜갔듯이, 나 역시 몇 년 혹은 몇십 년에 걸쳐 나만의 자급자족 리틀 포레스트를 성장시켜갈 생각이다.
오늘도 텃밭에 갔다. 한 달 전 찬바람 불 때 심었던 쪽파도 조금 수확하고, 김장 무 대신 심었던 총각 무도 3주일 만에 폭풍 성장을 해서 오늘 솎아주었다. 솎은 무청은 버리기 아까워 집으로 가져가 겉절이처럼 김치를 담가보기로 했다.
쌈 채소도 한 바구니 잔뜩 수확했다. 쌈 채소를 수확한 김에 며칠 전 돈 주고 사 먹기 아까워서 미뤄둔 샐러드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100그램이 뭐야, 300그램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양이다. 그럼 오늘 하루 종일 7,500원어치를 수확한 셈인가? 값으로만 따지자면 모종 2천 원어치 사서 3주 만에 벌써 수익률 300퍼센트 달성했고, 11월까지 수익률 2,000퍼센트는 거뜬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정도면 꽤 쏠쏠한 투자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주식창이 마이너스로 뚝뚝 떨어질 때마다 농장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익률이 저절로 쭉쭉 오르는 텃밭을 보고 있으면, 하향하는 파란 막대가 뜨는 주식창은 잊히고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 내가 먹는 것들을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건 이렇게나 나를 든든하게 해주는 거구나.
몇 해전 '파테크'가 유행할 정도로 파값이 폭등하고, 물가가 오르며 마트의 가격표 앞자리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분위기가 술렁거릴 때조차 나는 마음이 고요하고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물가가 아무리 많이 올라도 부담 없이 생활할 만큼 돈이 많은 것도 경제적 자유겠지만,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그것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결코 휘둘릴 것 없는 생활 역시 하나의 경제적 자유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전자보다 후자의 삶을 이루는 것이 단연코 훨씬 쉽다고 느낀다.
요즘 나는 돈 버는 일보다도 돈을 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활과 방법에 관심이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리 큰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 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하하) 내게는 돈을 더 버는 것보다 돈을 덜 쓰는 것이 더 쉽다. 돈을 덜 쓰려면 생활에 돈 드는 구석이 줄어들어야 한다. 생활의 외주화를 최소화하고, 생활 자립 기술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텃밭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연습 같은 개념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돈을 덜 스는 삶의 가장 큰 중심축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밀가루를 탈탈 털어 수제비를 만들고, 시든 잡초 같아 보이던 집 앞의 겨울 배추를 뽑아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현실감 뚝 떨어지는 환상 같은 영화 장면일지라도 나는 이렇게 소탈하고 소박한 장면에 끌린다. 그리고 직버 해보니 완전히 환상만은 아니다. 1년 내 열심히 농사지을 수 있는 텃밭만 있다면 큰돈 없이도 정말로 충분히 밥 해 먹고 살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오늘도 꿈꾼다. 텃밭과 함께 늙어가는 꿈. 텃밭을 통해 이루고 싶다. 작고 소박한 삶, 내게 주어진 것에서 아름다움과 만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삶. 적어도 충분한 삶. 우리의 텃밭처럼, 자연스럽게.
* 더 재밌고 많은 이야기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