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 이혜림 Apr 03. 2024

별종은 별종을 알아본다

별꼴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지금 이 삶을 사는 이유



예단, 예물, 스튜디오 촬영을 비롯하여 결혼바지조차 없이 결혼식을 치르고, 결혼 2년 만에 한국 생활도 모두 정리하고 약 1년간 세계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우리 부부는 별종이 되어 있었다. 내 딸만 별종인 줄 알았는데, 어쩜 신랑도 똑 닮은 사람으로 만난 거냐며 신기하다고 웃는 엄마 옆에서 나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둘이서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질 않나, 코로나 긴급 구호요청을 보고 하루 아침에 포항으로 내려가 두 달을 머물며 의료지원을 하질 않나, 우리 이야기로 책을 써보겠다며 방에 콕 틀어박혀 글을 쓰는 건지 노는 건지 모를 모습을 보이질 않나... 취직할 생각은 요원해 보이는 자식들을 지켜보면서 부모님은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별종이라지만 빨리 직장에 다시 취직해서 돈 벌고 자리 잡아 아이도 하나둘 낳고 알콩달콩 남들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마음을 처음으로 표현한 건 내가 진짜 우리 이야기로 책을 출간한 이후였다. 결혼부터 세계 여행, 그 이후 약 1년간의 삶을 미니멀리즘으로 담아낸 에세이였는데, 그 책을 읽고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 걱정은 안 한다."


텃밭에서도 우리의 별종 같은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일단 우리처럼 젊은 사람이 주말 농장을 가꾸는 것이 드문 일이어서 자주 이목을 끌었다. 다행인 것은 농장 사장님이 '젊은 부부가 요즘 사람들 답지 않게 별꼴'이라고 말하시면서도 우리의 별꼴 행동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농장 안쪽 마당에 바싹 말리고 있는 천연 수세미를 보고 반가워했더니, 사장님은 수세미 여러 개를 챙겨 주셨다. 


"비닐 멀칭은 왜 안 하나? 그걸 해야 잡초도 안 자라고 물도 자주 주러 안 와도 되고 편한데."

"1년 쓰고 버리는 썩지 않는 쓰레기인데 굳이 저까지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물이야 더 자주 와서 주죠 뭐." 


실없이 웃고 말았더니 사장님은 또 내게 별꼴이라며 자리를 떴다. 재미있는 건 그날 이후 우리 밭이 달라졌다는 거다. 한동안 밭에 가지 못해 걱정되는 마음으로 텃밭에 달려가보면 마치 오전에 비가 았던 것처럼 땅은 이미 촉촉했고, 물을 흠뻑 먹은 작물들은 늘 싱그러웠다. 누가 이렇게 우리 대신 밭에 물을 주는 걸까 궁금했는데, 이른 아침 우리 밭에 물 주고 있는 사장님과 맞닥뜨리며 수수께끼가 풀렸다. 앞에서는 무심한 듯 툭툭 말하시면서도 뒤에서는 우리 밭에 남몰래 물을 주던 사장님. 그날부터 우리는 사장님을 수호천사라 불렀다.





어느 날 농장 사장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대파가 생각만큼 잘 자라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니, 현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자네들이 먹을 것인데 조금 덜 자라고 더 자라면 어때. 열무니 배추니 하는 것들도 벌레 좀 먹으면 어떻고. 건강하게 키우면 그만이야. 자기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디 내다가 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다 먹을 것들인데 예쁘고 실하게 키우는 것보다 조금 부실해보여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예쁜 걸 좋아하니까 자꾸만 약을 치는 거여. 농약을 안 치면 그렇게 키울 수가 없어. 대파는 제대로 농사하려면 농약 정말 많이 쳐야 해. 여기도 보면 밖에 내다 파는 사람들은 농약 안 치고 키우는 대파가 없어. 그런 걸 먹고 사는 게 당연해진 세상이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키운 거 아니면 잘 안 먹어."


예전엔 농사를 아주 크게 지었다는 사장님은 먼 산에 시선을 둔 채 무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예쁜 걸 좋아하니까, 자꾸 예쁜 상품만 파는 거고, 더 고르게 예쁜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해내기 위해 더 많은 화학 작용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 그런 걸 먹고 사는 게 당연해진 세상이라는 사장님의 말씀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이후로 유기농 스티커를 붙이고 마트 매대에 올라오는 농작물이 달리 보였고, 가급적이면 유기농 제품을 더 많이 사 먹으려고 노력했다. 내 몸에 건강한 것을 먹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이 땅에 유기농법을 고수하며 농사짓는 농부님들을 향한 나의 작은 응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생협에서 판매하는 유기농 딱지가 붙은 과일들은 하나같이 다 못생겼다. 귤은 곰보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색은 푸르딩딩하며, 사과도 울긋불긋 색이 고르지 않고 윤기가 없이 거칠어 보인다. 윤가나 보이기 위한 왁스 코팅도, 인위적으로 빨리 후숙시키기 위한 화학 처리도 하지 않고, 농약 제초제 뿌리지 않은 노지에서 거친 비바람과 강한 햇살을 맞으며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큰 과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과일은 예쁜 것으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못생긴 유기농 과일들을 꺼린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제일 먼저 유기농을 찾아 먹게 됐다. 식재료를 구입할 때 '예쁜 것을 골라 산다'는 선택지가 사라졌고, 식재료를 구별하고 찾는 기준 자체가 변했다. 겉으로 보기에 윤기 나고 예쁜 과일보다는 조금 모나고 거칠더라도 키우는 환경이 무해한 것이 맛도 더 좋고 내 몸에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텃밭을 통해, 주말 농장 사장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어쩐지 나는 매년 작은 텃밭을 가꾸며 점점 더 별종스러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농장 사장님처럼 내가 키우는 거 아니면 안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그러기에 나의 텃밭은 너무나 작다) 나의 먹을거리를 직접 키우며 품이 더 많이 들더라도 자연과 작물에 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을 고집하고,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한다.

관심이 생기니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다보니 더 많은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귀한 토종 씨앗과 전통 작물이 종묘사와 글로벌 농약 회사간의 이익 구조 때문에 밀려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농작물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다며 뿌리는 제초제가 오히려 밭의 유기물들을 죽여 땅을 더 텅 비고 병들어가게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회복 시간을 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든 화학비료를 주며 쉴틈 없이 착취하는 농사. 그런 것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다다보니 농사에 임하는 마음이 조금씩 진지해지고, 시중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할 때도 고르는 기준이 조금씩 더 깐깐해진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내 삶의 단면을 보고 '별꼴'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도 별종 라이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 사고로 분리하면 내 삶은 굉장히 별나게 보이지만, 인간과 자연이 서로 도우며 건강하게 순환하는 하나의 큰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는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그토록 찾던 건강한 삶이라는 확신이 든다.


윤기도 없고 모나고 생채기도 있고 한쪽 구석은 벌레 먹고 듬성듬성 멍도 들어 있는 못난이 사과. 별종 라이프는 그런 못난이 사과와 같은 삶이 아닐까. 


남들 눈에는 그저 상품 가치 하나 없는, 버려지는 게 마땅한 못난이. 그러나 농약 하나 치지 않고 자연의 에너지 듬뿍 받고 자란 건강한 사과 말이다. 분명 시장에 내다 팔면 주목을 끌지 못해 인기 하나 없겠지만, 나처럼 나서서 사 먹을 정도로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작은 소망은, 못난이 사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서, 건강하게 자란 먹을거리를 누구나 믿고 사 먹을 수 있는 세상.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사는 게 당연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아무 약을 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우리 집 리틀 포레스트 작물들 






이전 07화 호사스러운 캠핑 다녀왔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