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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Apr 01. 2024

호사스러운 캠핑 다녀왔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아서 즉흥적으로 당일 에약 후 곧바로 여행을 떠났다. 숲속으로의 캠핑이었다. 짐을 한 번에 들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가고, 음식은 간단하게 집 근처 상점에서 포장해서 먹었다. 그리고 남는 모든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에 썼다. 저녁에는 데크에 가만히 앉아 산 너머로 저무는 호젓한 일몰을 감상했다. 무척이나 따스하고 황홀한 시간이었다. 일몰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지만,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긴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해 뜨기 직전, 먼저 잠에서 깬 숲속의 새들이 마음껏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잠에서 깼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텐트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끓여 마시다보면 새벽 공기에 잔뜩 움츠러드는 몸도 살살 부드럽게 풀린다. 


자동차 경적 소리도,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도 없는 숲속에서의 아침은 온통 자연의 소리로 가득하다. 텐트 위 나무에서 새벽부터 나를 시끄럽게 깨운 딱따구리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처음 보는 꽃이나 처음 보는 곤충을 관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내 마음에는 고요와 평화가 깃든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캠핑을 떠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자연 속에서의 휴식뿐이다. 숲속에 있으면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은 언제나 충만해진다. 자연만으로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잊을 만하면 캠핑을 떠난다.


하룻밤 자는 집 짓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워서 텐트는 지붕을 하늘 끝까지 들면 휘리릭 하고 완성되는 3초 원터치 텐트로 구비했다. 침구는 집에서 평소에 덮고 자는 이불을 보자기에 꽁꽁 싸매서 들고 다닌다. 주방용품, 세안 용품, 개인용품으로 채운 딱 하나의 캠핑 박스와 캠핑의자, 자충 매트가 우리 부부가 가진 캠핑용품의 전부다. 캠핑을 위한 쇼핑 카테고리에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그중 우리 부부가 선택한 것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캠핑장에서의 시간을 중세 시대 귀족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주 호사스럽게 쓴다. 


가지고 가는 짐이 적으니 캠핑 사이트의 주차장 간의 거리가 멀어도 개의치 않고, 텐트는 두 사람 딱 누울 정도의 크기니 데크가 얼마나 큰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전기를 사용하는 도구 하나 없으니 전기 못 쓰는 캠핑장이어도 오케이. 샤워는 하루 쯤 건너뛰면 된다는 마음으로 온수 안 나와도 오케이. 특별한 요리도 안 해 먹으니 바비큐가 안 되어도 오케이. 불명 안 해도 오케이! 하룻밤 자는 데에 필요한 조건이 없으니 어딜 가도 상관없고 그래서 늘 자유롭다. 설치하거나 정리해야 하는 물건이 없기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캠핑장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되어 텐트와 의자 설치를 마치고,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해피 아워를 즐긴다. 출출할 때쯤 집에서 미리 만들어 온 밀키트로 음식을 끓여 먹거나 근처 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거나, 물놀이를 하거나, 낮잠을 잔다.


캠핑하는 모습이 이렇다보니 경관이 수려하거나 시설이 호텔 5성급만큼 편리해서 몇 달 전에 예약해야 갈 수 있는 사설 캠핑장보다는 국립공원을 선호한다. 장작 태우기도 안 되고, 바비큐도 안 되고, 와이파이는 당연히 없고, 전기는 물론이거니와 온수가 안 나오는 곳들도 많다.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화장실에도 약을 치지 않아서, 볼일 볼 때 양옆으로 벌레들이 윙윙 날아다니기도 한다. 가끔 날아다니는 벌레가 엉덩이에 붙을까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볼일을 서둘러 끝내기도 하지만, 그런 곳에 가면 마음만은 편안하다.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어디에도 해롭지 않은, 그런 환경에 내가 조화롭게 놓여 있다고 생각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평화로움이 있다.


인간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새긴 온전한 자연 속에서는 시간도 도심과 다르게 흐른다. 그런 곳에서 하룻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머물고 나면, 또다시 분주한 도심 속에서 단단한 마음으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소음으로부터의 해방, 자연에서 치유 받는 캠핑.

1박 2일 숲속에서 캠핑을 마치고 나면 늘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걸 꼭 다 갖추고 살 필요는 없구나. 오히려 없어도 크게 지장 없다는 마음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구나.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구나.









* 더 많은 이야기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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