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때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비스직, 사람 대하는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선택한 길이고 시험 합격이 우선이니 걱정은 접어두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쉽지 않다.
처음 발령받은 부서에서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다들 민원대가 아니니 괜찮다고 얘기했다. 도대체 민원대는 어떤 곳이길래. 궁금하긴 해도 겪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민원대에 발령받았다.
공무원 조직에 들어와서 보니 주위 사람들 다 나보다 똑똑해 보인다. 내게 질투심, 경쟁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성격이 무딘 편이라 그런지 질투심이 없어 보인다, 남 일에 관심이 없다, 강단 있다, 외유내강이다 따위의 말들을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계속 주눅 들어 있다. 다들 틈틈이 책 읽고 편람, 법령들을 찾아보고 민원인들한테 와다다 설명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차서 얘기할 수 있지? 얼마나 공부했을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담대할까.'
내성적이라 발표하는 게 싫어서 선생님이 아닌 공무원이 되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나한테는 공무원도 쉽지 않은데.
그래도 대면해서 말하는 것, 전화받는 것은 잘하겠는데 전화 거는 게 두렵다. 이유를 모르겠다. 유튜브에 전화공포증 극복하는 법 같은 걸 검색해 봐도 전화받는 방법만 잔뜩 알려주고 전화 거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다들 전화받는 게 어려운가. 나는 전화 거는 게 어려운데.
왜 유독 전화 거는 것만 두려운 걸까?
살면서 전화 업무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문화재 연구원에서 일할 때 전화 통화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발굴 현장에서는 전화통화 할 일이 거의 없고, 현장을 안 나가서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는 유물 복원 작업이나 보고서 작업을 한다. 하루 종일 아니, 몇 날며칠 유물 접합만 하거나, 유물 실측만 한 적도 있다. 혹은 현장에서 실측해 온 유구 도면을 스캔하여 캐드, 일러스트, 포토샵 작업만 하였다.
전화는 행정팀에서 하는 것이었다. 매장문화재가 나오는 바람에 공사가 중지된 건설사나 땅주인의 불만 섞인 전화도 행정팀에서 감당하였다. 전화통화를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니 나는 포클레인 기사님, 철물점 사장님과 통화해 본 게 전부이다. 심지어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건 전화라 사무실에서의 업무 전화와는 다르다.
남자들이 종종 군대보다 힘들다*며 때려치우는 발굴 현장도 견뎠는데,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전화 통화가 더 어렵다.
*내 생각에 군대가 더 힘들 거 같은데, 둘 중 하나만 경험해 본 나로서는 둘 다 경험해 본 그들의 말을 '정말 힘들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런 숨 막히는 사무실을 겪어 본 적이 없다. 거의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민원인들 연령대가 60대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경상도 어르신들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나도 경상도 사람이고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인부 어르신들과 함께 일했었는데도, 어르신들 말을 다 알아듣는 건 어렵다.
또 발급해 주는 서류 종류가 정말 많고, 그것들과 관련된 법, 시행령, 시행규칙과 원칙, 예외들을 어느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민원인들한테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서류 하나 떼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서류명이 정말 많다. 나도 몰랐던 서류들을 민원인들한테 법령에 근거해서 쉽게 설명해 줘야 한다. 다들 무시하는 직업이지만 나한테는 이조차도 어렵다. 게다가 순환 근무라 다른 부서로 발령 날 때마다 새로운 일을 다시 배워야 한다.
'누가 9급 업무 단순하다 했어.'
'나만 어려운가. 내 머리가 돌머린가.'
업무를 좀 알겠다 싶다가도 새로운 경우가 나오면 민원인을 앞에 두고 여기저기 다른 부서에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이조차도 나에게는 긴장되는 일이다. 옆사람들이 신규인 내게 많이 알려주고 도와주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나한테 뭐라 할까 봐 쫄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 게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혼자 쫄고 지랄이다(?). 남들에게는 전화 업무가 별 거 아닐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를 어째야 하나.'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게 편해져서 고민이 있으면 책이나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사가 되어 다른 지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대학 선배에게 상담을 구하였다.
"선배, 저 사람 공포증 있는 거 같아요."
"콜포비아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저인 거 같아요."
"부끄러워서 어디 말도 못 하겠어요."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한 15분간은 와다다 내 얘기만 쏟아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다 들어주기만 한 선배가 말했다.
"너는 지금 너의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야."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게 있을 거라고도 했다.
전화를 끊고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라는 말을 계속 곱씹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뭐가 있는지도 생각하였다. 인사를 잘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민원인이 왔을 때 웃으며 인사하고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저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얘기를 듣는다. 전화를 받을 때도 '뭐가 궁금한 걸까' 생각하며 받는다.
문득 전화 걸 때도 대면할 때처럼 웃는 표정을 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웃는 건 자신 있으니까. 그래도 긴장돼서 할 말을 적어놓고 전화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일본 워홀 때 만난 91년생 친구에게도 고충을 털어놓았다.
"언니의 외향적인 모습만 봐와서 이런 고민이 있을 줄 몰랐어요."
"예전 회사가 캐주얼한 분위기라서 지금 회사가 더 딱딱하다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너무 눈치 보지 마요."
어찌어찌해 나가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려다 직원 한 명과 마주쳤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왜 예상을 못했냐면 사무실 분위기가 딱딱하고 서로 업무 외의 얘기는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임님, 일 할 만해요?"
"아니요."
그렇게 화장실 앞 복도에서 그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서로 어떻게 공무원이 되었는지, 전공이 뭐였는지 따위의 얘기들을 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전화할 때 사람들이 내 목소리 듣는 게 싫어서 타이밍 보다가 조금 시끄러워지면 그때 전화해요."
"저도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전화할 때 할 말 적어놓거나 컴퓨터 화면 보면서 얘기해요."
"저도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래요, 안 그런 척하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다들 엄청 똑똑하신 거 같아요. 어떻게 방대한 편람을 외우고 민원인들한테 설명할 수 있는 건지! 다들 표정도 편안해 보여요."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그런 건가요?"
"네, 안 그런 척하는 거예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존예인데 마음씨도 예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