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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Nov 01. 2018

두 번째 퇴사, 첫 번째 일감

기술도 없는 사무직 퇴사자의 프리랜서 도전기


첫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던 날의 기억이 그토록 생생하게 남아있는 데 반해, 시기상으로 보면 훨씬 현재에 가까운 두 번째 퇴사일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흐릿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퇴사에 대한 감흥 자체가 훨씬 적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길고 긴 버팀 끝에 드디어 회사 밖에서 돈을 벌게 되었다는 뿌듯함에 압도되어 마지막 출근일에 응당 느껴져야 할 기분(설렘과 두려움, 안도와 후회가 공존하는 그 모순적인 기분)을 거의 체감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분명 있었다.


나는 회사의 유리문을 밀고 나와 그토록 꿈꿔 왔던 프리랜서의 일상 속으로 타박타박 걸어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커피를 내려서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작업을 한다. 점심때가 되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차려서 내 속도대로 먹는다.


이 점심시간이야말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가장 큰 혜택 중 하나였다. 식도락을 인생의 낙으로 삼으면서도 먹는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직장인 시절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고역스러울 수가 없었다. 일찍 입사하여 늘 막내였던 내게 메뉴 선택권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고,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네다섯 명의 멤버가 메뉴에 대한 합의를 보고, 식당을 찾아가고, 종종 긴 줄을 견뎌 가면서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하고,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쑤셔 넣은 뒤 오후 업무시간을 견디게 해 줄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기 위해 튕기듯 일어나는 그 모든 과정이 싫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전날 과음으로 부대끼는 뱃속에 크림 스파게티를 우겨넣거나 씹지도 못한 채 삼키느라 명치에 그대로 얹혀버린 밥알을 커피로 눌러 내릴 필요가 없었다. 오전 작업을 하다가 배가 고파오면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따져가며 메뉴를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집 앞 슈퍼에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하면서 공들여 요리를 하고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가끔은 멀지 않은 식당까지 걸어가서 평일 런치세트를 사먹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고, 식사 후에 날씨가 좋으면 30분쯤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길어져 오후 일과가 늦게 시작된다고 해도, 저녁에 한두 시간 더 일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딱히 부담될 것은 없었다.




물론 시작부터 모든 순간이 즐겁고 여유롭기만 할 수는 없었다. 책 한 권을 온전히 책임지고 번역하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만큼, 초기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때로는 번역이 막혀서 한 문장을 가지고 몇 시간씩 씨름하기도 했고, 때로는 도저히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고유명사를 만나(‘Patreksfjörður’를 도대체 뭐라고 읽어야 한단 말인가?)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개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 가능한, 비교적 무난한 어려움에 속했다. 내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은 너무나 기본적이면서도 내가 초짜라서 모르는 업계의 룰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해달라고 책 한 권을 받긴 받았는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클라이언트가 말한 처음의 범위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바로 그랬다. 본문이나 주석은 그렇다 치고, 표지 뒤에 쓰여 있는 원서의 미국 출판사 이름이나 인쇄소 정보까지 전부 번역하는 게 맞을까? 책 맨 뒤에 달린 참고 문헌의 제목몽땅 우리말로 옮겨야 하나? 헷갈릴 때는 일단 전부 번역해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번역문의 글자 수를 기준으로 정산되는 원고료를 떠올리면 괜히 불필요한 부분까지 기재했다가 ‘청구 금액을 부풀리려고 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두렵기도 했다.


직장생활로 따지면 신입사원이 복합기나 업무용 전화기 사용법을 몰라 쩔쩔 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프리랜서는 짜증을 내면서라도 가르쳐 줄 상사나 선배가 없으니 그저 하염없이 막막할 때가 많았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영상을 찍든, 대부분의 프리랜서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이런 종류의 문제들일 것이다. 일은 밖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업계의 룰은 직접 뛰어들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으니까. 물론 에이전시나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한 명의 프로로서 일감을 맡아 놓고 사소한 질문 때문에 너무 자주 연락을 하면 경험이 부족한 티가 날까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인터넷을 뒤지거나 서점에 달려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책들을 열심히 살피면서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애써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전긍긍과 안절부절을 감안하고라도, 첫 책을 번역하던 기간은 기본적으로 꿈을 꾸는 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따금씩 내가 회사 밖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지금 이 자유를 얻기 위해 그 오랜 기간 불안을 달래며 꿋꿋이 걸어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찼다. 유혹에 흔들리고 서러움에 무너진 적도 분명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낸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했다.


이렇게 가끔 막막하고 자주 즐거웠던 두 달간의 프리랜서 생활은 한 편의 번역 원고라는 결과물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첫 작업이니만큼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다행히 마감 펑크나 오역 클레임 같은 아찔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내 자식 같은 작업물은 출판사로 무사히 넘어갔고,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인쇄사의 손을 차례대로 거친 뒤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긴 기다림 끝에 손에 넣은 첫 번역서가 나를 어엿한 프리랜서로 자리 잡게 해 주었을까? 내 평범한 인생에 그런 디즈니 만화 류의 해피엔딩이 한 방에 찾아올 리가. 첫 책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다음 일감을 받지 못한 나는 그날 부로 또 다시 백수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좌절할 일만도 아닌 것이, 두 번째 백수기를 맞는 내 상황은(그리고 마음가짐은) 막연하게 프리랜서를 준비하며 보냈던 첫 번째 백수기 때와 확연히 달랐다. 남들 눈에는 똑같은 백수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내 손에 들린 패가 그 때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게는 단 한 권이나마 내 이름으로 된 번역서가 있다. 자잘한 공역까지 따지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는 작업의 수는 더 늘어나고, 어설프게나마 웹툰 작가로 활동한 경험도 있다.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든 프리랜서 바닥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 일을 따내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한 번 맛본 프리랜서의 삶은 회사 밖에서 먹고 사는 인생이 더 행복하리라는 내 오랜 짐작에 확실한 쐐기를 박아주었다. 좋아하는 소고기를 마음껏 못 먹더라도,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가방을 못 사더라도, 나는 타이트한 정장 대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북적이는 전철역 대신 한적한 동네 카페로 향하는 일상이 못 견디게 좋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에 대한 애정과 버티면 언젠가 일감이 들어오리라는 확신도 안정적인 수입원을 향한 아쉬움을 온전히 채워줄 수는 없었다. 일단 두 번째 백수기를 맞이하자, 앞으로 언제든 세 번째, 네 번째 백수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 피부로 느껴졌던 것이다. 뭔가 대책을 세워놓지 않는다면 그 때마다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으며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를 뒤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불안을 가능한 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 쪽지가 날아온 것은 내가 백수의 불편한 한가로움을 벗 삼아 한창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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