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과 10초 눈싸움
오늘 소개드릴 치트키... 아니, 꼼수는 매우 간단한 방법입니다. 미루고 있는 일을 10초 동안 쳐다보는 거예요. 할 일과 눈싸움 하기. 이게 다입니다. 그 일을 시작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10초 동안 쳐다보는 것만을 목표로 합니다.
예를 들어 기획서를 써야 한다면 기획안 파일 아이콘을 10초 동안 쳐다보든가, 좀 더 용기가 있다면 파일을 열어놓고 그 백지를 10초 동안 쳐다봅니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면 씽크대의 설거지 더미를 빤히 쳐다봅니다. 10초 동안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볼 수 있다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렇지만, 아마 못 하는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행동은 비록 쳐다보는 것뿐이지만, 지금껏 미루고 피하던 일을 '직면'해야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즉시 반사적으로 SNS를 켜거나 딴짓으로 손이 옮겨가게 될 겁니다. 이 방법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사용합니다.
아주 단순한 방법인데도 이 방법이 제게 효과적이었던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왜 일을 피하고 미룰까요? 사람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많은 이유를 하나로 묶어 말하자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불안하고, 귀찮고, 무섭고, 자신이 없어지는 등등,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이 나쁜 기분을 이기고 "그래도 해야지"라며 일을 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프게도 저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아요. 나쁜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쳐버립니다. 맹수를 앞에 둔 사람이 도망치듯이요. 실제로 편도체는 이 상황을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미루기에 불안이 많이 개입하는 편인데요. 할 일을 떠올리면 불안해지고, 그 일이 무섭고, 막막합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돼요. 그래서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딴짓으로 회피해 버려요.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은 그대로죠? 그 일이 그대로면? 불안도 그대로죠? 그런데 시간은 흐르죠? 그래서, 결국은 놀고는 있으나 더욱 불안해지는 상태가 됩니다.(미루기에 대해 유쾌한 통찰을 보여주었던 팀 어번은 이렇게 놀고 있는 상태를 'Dark Playground'라고 표현합니다ㅋㅋㅋ)
'10초 쳐다보기'는 이 불안을 똑바로 직시하는 행동입니다. 쳐다보지도 못했던 두려움을 마주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루기를 다룰 때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어려운 부분이 바로 불안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조금이라도 일을 시작하는 것이 모든 단계에서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적는 방법들은 전부 '시작'에 초첨이 맞춰져 있습니다. '10초 쳐다보기'는 이 미치고 팔짝 뛰도록 어렵고 힘든 '직면'을 컴팩트하게 다듬은 것입니다. 그동안 별별 방법을 다 써보다가 이렇게 정리되었답니다. 딱 10초만 쳐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할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10초만 쳐다봐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쳐다보세요. 10초를 채우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보세요. 이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어떤 일을 미루고 있는 저를 밖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탱자탱자 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은 누구보다도 바쁘고 진지합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뭐가 필요한지, 이 일이 망하면 어떻게 될지 등등...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루게 됩니다. 미루기를 끊을 때 필요한 건 언제나, 예외없이, 생각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미루기러로 사는 몇십년 동안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었을 뿐이죠! 아무튼, 비교적 정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을 쳐다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에요. 움직임이 시작된 거죠. 움직이는 데 성공만 한다면 다음 단계는 더 쉬워집니다. 계단이 점차 낮아져요. 높디 높은 첫 계단을 '쳐다보기' 정도로 오를 수 있다면 꽤 괜찮지 않나요?
불안이 높은 분이라면 '10초 눈싸움'에 옵션을 하나 달 수 있습니다. 미루고 있을 때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거예요. 이 방법은 불안장애를 다룰 때 많이 사용하는데요. 심리상담에서 배운 뒤 제가 아무렇게나 어레인지해서 여기저기 갖다 붙이며 썼습니다. '10초 눈싸움'을 하기 전후로, 현재 느끼는 불안에 점수를 매겨보시길 추천합니다.
어떤 일을 미루고 있을 때:
미루던 일을 10초 동안 쳐다보는 데 성공했을 때:
똑같은 질문을 '10초 눈싸움'를 하기 전과 후에 하는 거예요. 막상 일을 시작하면 불안이 낮아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알고만 있는 것과, 실제로 확인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매번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 한번씩 해 보세요. 하지만 꼭 어딘가에 적거나 메모를 해서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래야 정말로 '확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건 미래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아마 얼마 후에 우리는 일을 또(!) 미룰 텐데요. 그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이 기록을 보면 눈물나게 고마워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