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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킴 May 13. 2024

26화. 전신마취를 해보면 깨닫게 되는 24시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나는 운이 나쁘게도 운이 좋게도(?) 전신마취 수술 경험이 세 번 있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축구에 한참이나(아직까지도) 미쳐있던 나는 어느 고등학교 축구 대회에 나가 하루에 세 경기를 죽어라 뛰었고 그다음 주 가슴과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던 우리 고등학교는 그냥 걸어도 숨이 찰 정도였는데, 나는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살았기에 당연하게도(?) 매일 지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따라 심장 박동이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숨이 차는데 가슴도 이상하게 강한 느낌으로 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시 담임 선생님께 아침 조회 이후 이야기 했더니 잘못된 자세로 잤구나 하며 근육이 결린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점심시간까지도 이상함을 매우 느꼈다. 하필이면 당시 반대항 교내 축구대회를 또 앞두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조퇴를 하여 동네의 한 소아내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별 이상은 없다며 돌려보내려 했고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잠깐만요. 음, 여기 폐에 얇게나마 선이 하나 보이는데요 이거 병원에 가서 한번 정밀 진단을 받아보셔야 되겠는데요?"


후일담이지만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의 매의 눈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 이후에도 축구를 하다가 쓰러져 숨 막혀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유는, 큰 병원에 가서 깨달을 수 있었다. MRI인가 CT인가를 찍고 보니 나는 키가 크고 마른 청소년들에게 잘 발병한다는 기흉(공기주머니에 해당하는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이로 인해 흉막강 내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게 되는 질환)에 걸린 것이었고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몇 미리만 공기 방울이 생겨도 큰 것인데 당시 나에게는 1.2cm의 공기 방울이 생겨있다고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전신마취를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누워서 차디찬 수술실로 향하는 수술대 위에서의 느낌은 정말이지 이상하고도 묘했다. 어린 나이에 전신마취라는 것은 얼떨떨하면서도 당황스러웠지만, 친절하게 나이와 키를 묻는 마취과 선생님에게 답을 하다 보니 0.1초도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추운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져 있었다. 아니, 사실 거기가 회복실인 줄도 몰랐다. 그리고 숨을 쉴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하게 되었고, 목구멍 깊이 호흡관을 넣어두어서 그런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으... 으... 아... 아파요..."


사실 정확히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의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마약성 진통제를 놓아주셨고 내 흉부에 구멍이 뚫려 고무관으로 이어진 공기통을 보고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수술실을 빠져나와서 알았지만 3~4시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에게는 0.1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두 번째 전신마취는 스무 살 중반 무지 추운 겨울날 역시나 또 축구를 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토요일 이른 새벽 산 중턱 위에 있는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던 나는 상대방의 거친 태클에 옆으로 넘어졌고 꽝꽝 언 겨울날의 그라운드에 어깨를 박았다. 뭔가 불길한 두둑 소리가 났고 나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결국 운동장 옆 스탠드까지 팀원들이 나를 부축해 이동했지만, 그곳에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급히 부른 앰뷸런스는 움직일 수 없는 나를 위해 산 중턱 그라운드 안까지 올라와 나를 태우고 갔다. 내가 얼마나 운동하다가 많이 다쳤는지, 천방지축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인드가 어떤지 여기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앰뷸런스에서 나는 이른 토요일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에 어머니께 전화드렸고, 앰뷸런스에 실려가고 있는 나에게 아들 어머니는 딱 한마디 하셨다.


"응, 네 목소리로 전화할 수 있으면 됐다."


아직도 생각하면 정말 얼마나 많이 다치는 아들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강한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응급실에 입원한 나는 쇄골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엑스레이를 찍어보지 않은 상황에 어린 의사 선생님들이 뼈를 맞춰보겠다며 양쪽에서 내 어깨를 당겼고 그 순간이 그 긴박한 응급실에서 내가 가장 아픈 사람인 것 마냥 소리를 질러댔던 순간이었다. 엑스레이를 찍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거의 알파벳 Z자로 부러진 나의 세 조각난 쇄골을 보고 방사선과 선생님이 진단을 내려주었다. "이거 수술해야 돼요." 결과를 방사선실에서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는 것이었고 수술을 월요일 아침에 가능했다.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나의 부러진 쇄골 뼈를 부여잡고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몇 시에 수술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면 긴급한 순서대로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 아침 그 큰 대학병원에서 가장 먼저 수술하게 되었다.


성인이기에 청소년 때처럼 친절하게 질문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마취 주사와 호흡가스를 주고는 "마취시켜"라는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는 눈을 감은 기억도 없는 채로 눈을 뜨게 되었다. 역시나 0.1초의 시간도 느꺄지지 않았다. 1년 뒤 어깨에 심어진 철심을 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이 있다. 칼 필레머라는 작가가 쓴 책으로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삶을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해본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다는 것이 그들의 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의사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양재웅 원장이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양재웅 원장은 그 책의 저 내용을 읽은 후로 최대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를 해보면 내가 잠든 시간이 0.1초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마취과의 입장에서 전신마취는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환자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자의적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나의 기도 깊숙이 호흡관을 집어넣는지도 모르겠다. 의학적 지식은 없기에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순간이 0.1초로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다. 평생 잠을 자면서 꿈을 안 꾸고 잠을 이룬 적이 손에 꼽는 나에게 그 마취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암흑과도 같았다.


그래서 전신마취를 세 번 해 본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 이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고, 이 모든 타인들과 모든 세상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감으면 내 감정도 내 생각도 전부 사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방대한 온 우주가 어느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시뮬레이션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일 것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리고 어떠한 신을 믿는 자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20년이든 50년이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눈 깜짝할 새 지나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지구의 평균 나이로 따져봤을 때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 보면 남은 시간도 내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신마취를 해보고 내가 깨달은 것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겠다. 내 선택에 후회를 하지 말자. 후회는 나의 몫이 아닌 세상의 몫으로 남겨두자. 내가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은 당신을 심연 아래의 암흑으로, 현실의 시간개념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 것이다. 사후 세계는 그때 가서 생각하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이 지구에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은 너무 많은 사사로움에 상처받지도, 마음 아프지도 말자. 그러기에는 인간의 일생이 너무도 짧고 덧없다고 생각이 든다.


당신의 오늘 하루가, 내일의 24시간이 어땠을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하루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 간다는 것이다. 수많은 직장인이 월요병에 고통받을 오늘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화요일 아침이 당신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주어진 오늘 하루를 즐겼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당신의 인생에서 오늘 하루는 딱 한 번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이자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즐기자! 그리고 오늘도 빛나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전쟁과도 같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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