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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킴 Mar 10. 2024

9화. 죽을 만큼 힘들 때 한 번 더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말 띠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뛰어다니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렇다 보니, 초등학교 때 축구부에 들어 완전한 엘리트 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며 땀을 흘리는 것에 대한 매력을 알아갔다. 내가 얼마나 축구를 좋아했냐면, 초등학생 때 노란 축구 유니폼에 축구 쇼트에 스타킹까지 신고 축구화를 또각또각 거리며 대중교통을 부끄러움 없이 타기도 하고 백화점을 거닐기도 했을 정도였다. 쉬는 시간이면 무조건 운동장으로 뛰어나갔고, 점심시간에는 밥 보다 운동장을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점심시간에 축구하러 가는 것이 너무도 신난 나머지 계단을 몇 계단씩 뛰어 내려가다가 발목을 접질려 한동안 깁스를 차고 다닌 적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 심장과 관련한 재밌는 추억이 있다. 어느 날 내 심장 박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불규칙한 심장 박동에 동네 종합 병원을 찾아가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다행히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여기서 재밌었던 것은 내 가슴에 이런저런 의료기기를 부착하고 트레드밀(러닝머신)을 뛰는데, 의사 선생님의 반응이 참으로 재밌었다. 


얘는 뛸 때 오히려 더 심장이 안정적인데요?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뛰어다녔으면, 내 심장이 달릴 때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느낀다는 것일까. 참으로 재밌는 일화였고, 지금도 내가 불안정할 때 오히려 달리고 뛰는 이유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서도 축구선수라는 막연한 꿈을 포기 못했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둔 겨울 방학 때, 무작정 축구 선수를 남해 끝에서 하고 있는 동생들에게 연락해 테스트를 보러 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짐을 싸서 고속터미널로 가 남해 끝까지 내려가는 버스에서 부푼 꿈과 뜨거운 가슴을 부여잡고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하필 내가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가 방학을 보내고 온 선수들에게 공포의 체력 훈련을 시키는 날이었다. 당시에 넓디넓은 종합운동장의 모든 계단을 뛰어다녔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쯤 했던 훈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수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운동장 반대편 트랙에서 동시에 출발을 하고 두 팀 중 한 팀이 따라잡을 때까지 뛰는 훈련이었다.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나에게 동생이 옆에서 말했다. 


형, 이런데도 하고 싶어?


그때 나는 솔직히 정말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힘들어서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로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짐을 싸서 올라왔다. 그때 깨달은 것은 '아, 공부가 쉬운 것이었구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모든 운동선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내 인생의 이 어두운 터널은 언제 끝나지?',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만의 긴 휴식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정신, 심리적인 병은 공황 발작과 우울증 등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공황 발작이 오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모두에게 무언가의 원인이 있지만, 공황 발작에 관심이 많아 수많은 의사들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 결과.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순간에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공황 발작은 절대로 죽는 병이 아니기에 내가 운동할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내 신경계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축구, 러닝, 풋살,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미친 듯이 즐기는 이유는 되게 변태적 이게도 고통을 넘어서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인데, 바로 '러너스 하이'의 순간이다. 행복한 감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은 신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아온다. 그래서, 나처럼 '땀중독'에 빠지게 되면 단 하루라도 집에만 누워있으면 오히려 몸이 이상 반응을 보이고 심각한 기분의 저기압과 몸이 무거워짐이 함께 다가온다. 


달리기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는 것과, 심리적인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은 비슷한 면이 있다. 바로 '죽을 만큼 힘들지만, 절대로 죽진 않는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성장한다는 것이다. 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미친 듯이 힘들 때는 그냥 뛴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1km를 더 뛰거나 페이스를 올려 더 빨리 뛴다. 그러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오르고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강해서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주저앉더라도 신기하게 내일이면 오늘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뛸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그것을 경험하다 보면, 내 몸이 아니라 내 정신도 그렇게 강해진다. 그러니 끝날 것 같지 않는 당신의 어두운 터널도 한 걸음만 더, 1km만 더, 한 번만 더 뛰어보자. 그러다 보면 터널에 끝이 당장 당신에 눈앞에 올 것이라고 절대로 장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는 있다. 더 뛰고 더 뛰어도 어둠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죽지 않는다. 죽을 위기를 견디면서도 허물을 벗으며 더 단단해지는 랍스터처럼 우리도 죽을 만큼 힘들어도 한 걸음만 더 뛰다 보면 반드시 더 단단한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명대사가 있다. 

1996년에 개봉한 알 파치노 주연의 '시티 홀'에 나온 연설문의 일부이다. 


"I choose to fight back!"

"I choose to rise, not fall!"

"I choose to live, not die!"


"나는 맞서 싸우기로 했고, 나는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기로 했고, 나는 죽지 않고 살기로 했다"


우리는, 인생이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려움이 있을 때 남에게, 환경에게 기대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연설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나'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의지를 갖고 싶은데, 당신을 끌고 가 줄 인생 '러닝 메이트'가 없다면 언제든 힘이 되어줄 내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길,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글이 조금에 힘이 되어줄 수 있길. 


그러니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미래의 불확실함에서, 실연의 아픔에서, 믿음의 손실에서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당신의 어둠 속에서 반드시! 오늘 한 걸음만 더 내딛는 굳은 의지와 결심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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