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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숙희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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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Sep 26. 2024

살인자

23.

이홍수는 느지막이 잠에서 일어나 세수를 한다. 여전히 걸을 때 다리가 불편했지만, 잠을 푹 잤더니 숙취는 많이 사라진 듯 정성스레 얼굴을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딜 또 나가시려고요?” 이홍수의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 게 뭐야! 내가 나가건 말건!” 이홍수는 아내에게 고함을 꽥 지르고는 문을 나섰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음도 어제일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드문드문 나는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이홍수는 고갯길 쪽으로 가보기로 결심했다.

극장가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 술렁였다. 

“어제 골동품 가게 김영감 아들이 죽었데.”

“매일매일 하나씩 죽어 나가는구먼. 어쩌려고 이러는지 나원참.”

사람들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또 누구 하나 죽었나 보다 생각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고갯길을 오르다 보니 폐가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홍수는 폐가를 지나쳐 숙희 집으로 가려다 궁금해서 집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호성이 있었다.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마치 친한 친구를 부르듯 “김순사~!” 하고 호성을 불렀다.

호성은 순사보들에게 구경꾼들이 몰려들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김노인과 함께 죽은 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홍수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호성이 말릴 새도 없이 김노인은 이홍수를 보자 옆에 있던 돌을 주워 들어 이홍수의 머리를 가격했고, 이홍수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머리를 감싸 쥔 이홍수의 손 틈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지!!!” 김노인은 이성을 잃은 채 재차 이홍수를 가격하려 했지만, 호성이 재빠르게 김노인의 어깨를 잡는 바람에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김순사 이 손 놓게!!!!” 김노인은 호성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둥거리며 악을 썼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김노인과 이홍수를 보며 수군 거렸고, 호성은 순사보들에게 이홍수를 집밖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놓으란 말야 김순사!!!!! 저 놈이 내 아들을 죽였어!!!!!”

“아니구먼요. 아니구먼요. 진정하세유 영감님.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구먼요.”

호성은 김노인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자식을 잃은 아비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70대 노인이라고 하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힘이었지만, 덩치 큰 호성이 잡고 있자 부모 앞에서 말을 듣지 않는 아이처럼 버둥거릴 뿐이었다.

“제발 놓아주시게.. 내 저 놈을...” 김노인은 호성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안되는구먼요. 영감님 참으셔야 되는구먼요. 

호성은 김노인을 온 힘을 다해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사이 이홍수는 집 밖으로 몸을 피했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슨 영문인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저 영감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 저기 죽어있는 놈이 누구길래.’ 이홍수는 아무것도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홍수를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홍수는 몸을 일으켜 숙희가 사는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뒤에 누군가가 “살인자가 도망간다아!!!!” 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홍수는 정신없이 달려 숙희 집에 몸을 숨겼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집안 구조라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홍수는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숙희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선은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내가 부르면 당장 달려와야 할 거야.” 켄타는 숙희에게 으름장 놓듯 말했다.

켄타는 이홍수가 범인이란 말을 듣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남은 병력들에게 이홍수를 잡아올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사건 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홍수라는 놈은 어떤 놈이지.’ 켄타도 이홍수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야시 경시의 친한 친구로 늘 하야시를 등에 업고 자신에게 거들먹거리던 재수 없는 자식.

그 비리비리해 보이는 부잣집 도련님이 왜 사람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유일한 목격자가 진술한 바 그 자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날씨가 더운 것도 잊은 채 켄타는 부지런히 발을 놀려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폐가 앞에 모여 웅성웅성 거리는 모습을 보고 켄타는 그 앞에 멀뚱히 서있는 순사보들에게 고함을 지른다.

“이것들은 다 뭐야! 당장 해산시켜!” 

켄타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사람들은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고, 켄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호성이 무슨 일인지 김노인을 부둥켜 안은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아. 경부님 오셨구먼요. 영감님이 조금 흥분을 하셔서...”

“흥분을 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까 이선생이 여기에 잠깐 왔었는데.. 영감님이 이선생을 보고 흥분을 하셔서..”

“이선생이라면 이홍수 말이냐?”

“네. 그렇구만요.”

“그놈은 어디로 갔어! 그냥 놔줬단 말이야!!!?”

“예? 놔주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이 범인이란 말이다!!!!” 켄타는 소리를 빽 질렀다.

김노인은 서럽게 울기 시작하고, 호성은 눈만 끔벅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선생인 범인이라구요?” 호성은 김노인을 안고 있던 팔을 푼 채 털썩 주저앉는다.

“김순사!!! 왜 나를 말렸는가!!! 내가.. 내가!! 내가!! 그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아이고 상수야... 아이고 상수야.”

김노인의 온몸을 흔들어대며 울기 시작했고, 호성은 큰 죄를 지은 아이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켄타는 상수의 시신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가슴에 난 날카로운 상처, 머리를 심하게 맞은 흔적. 틀림없이 그 놈이다.

“거기에 멍청히 앉아 있지 말고 당장 가서 그놈을 잡아오란 말야!” 켄타는 호성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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