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은 연신 땀을 닦으며 고갯길을 오른다. 어제 비가 왔다는 것이 거짓말같이 강렬한 햇볕이 호성의 온몸을 땀으로 적셨다.
폐가 앞에서 호성은 크게 한숨을 쉬고 문을 열었다. 집안에는 상수의 처참한 시신이 놓여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에 피는 씻겨 내려갔지만, 상수의 가슴과 머리에 나있는 상처는 더 도드라져 보였다. 호성은 같이 온 순사보들 중 하나에게 켄타 경부를 모셔오라고 지시했다.
사건현장은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켄타의 말을 되새기며 호성은 상수를 만지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체를 보는 것은 익숙했다.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어나갔고, 시체를 보고 치우는 일은 늘 호성의 일이었다.
호성은 감나무 그늘아래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호성은 남은 순사보에게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라 지시하고 김노인의 골동품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극장가 대로변은 여전히 활기찼다. 인력거꾼이 둘이나 없어졌지만 여전히 인력거들은 손님을 싣고 열심히 달리고 있고, 오타의 양복점만 문이 닫혔을 뿐 다른 가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손님들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시대.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죽어 나가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경쟁자가 죽으면 당분간 그로 인해 더 많은 벌이를 할 수 있었고, 곧 그 죽은 자의 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져 나갔다.
느린 듯 보이지만 빨리 변해가는 삶처럼, 호성의 발걸음도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영감님 계신감요?”
“아이구! 김순사 오셨구만~!” 김노인은 호성을 반갑게 맞이했다.
“네. 저 왔구만요.” 김노인의 활짝 웃는 미소와 다르게 호성은 긴장된 표정이었다.
“날이 더운데 얼른 들어오게. 내가 시원한 차라도 한 잔 내오겠네.” 김노인은 호성의 방문이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저기... 영감님.. 영감님 아드님 있잖아유..” 호성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상수? 상수가 왜?” 상수 이야기가 나오자 김노인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그 빛나던 눈동자도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어제는 아드님을 보셨는감요?”
“어제라.. 어제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얼굴을 보진 않았네만. 조금 늦게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네.”
“글쿠만요.. 아드님은 요즘도 학교에서 일하시는감요?”
“그렇지. 그런데 상수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뭐 때문에 그러시는가?” 김노인이 초조한 얼굴로 호성을 바라보았다.
“아드님이 어제... 죽었구먼요.”
“뭐... 뭐????” 호성의 말을 들은 김노인은 충격을 받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상수가 왜? 그 아이가 왜!!!!!!! 누가.. 누가 그랬나!!” 김노인은 주저앉아 절규했다.
호성은 마치 자신이 죄인인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에 있나.. 우리 상수 지금 어디에 있나?” 김노인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호성을 흔들었다.
“저기.. 지랑 같이 가시쥬.” 호성은 먼저 골동품 가게를 나섰다.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숙희가 대답했다.
켄타는 아무 말 없이 숙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너무 어둡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숙희는 켄타와 눈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렸다.
“아까 유치장에 누워 있는 놈들을 봤겠지? 왜 그렇게 누워 있었을까?”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 하하하핫. 내가 뭐가 무서워서 네 까짓거에 협박을 하지? 나는 죄가 있으면 잡고 죄가 없으면 풀어주는 경찰이다.”
켄타는 경찰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고 깍지를 끼고 턱을 괸 채 숙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죄가 있어서 지금 저렇게 매 맞고 누워 있는 건가요?”
“뭐야?”
“제가 어제 분명히 봤다고요.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건 저 사람이 범인이 아니란 말이잖아요!”
“지금 네가 한 말은... 어제 그 살인을 저지른 놈이 이때까지 죽은 모든 사람을 죽였단 말인가? 어떻게 네가 확신할 수 있지?”
“그.. 그건!” 숙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는 그 범인이 누군지 아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할 수는 없지. 어제 네가 목격했다는 살인사건과, 이전 사건의 범인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사건의 범인을 목격한 네가, 저 안에 있는 자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 확신에 찬 말투는, 범인을 확실히 보았다는 걸 입증한다. 누구지? 그 범인은?” 켄타는 드디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는지 히죽이죽 웃기 시작했다.
숙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다가, 뭔가 결심한 듯 쪽진 머리를 다듬으며 말했다.
“범인은 이홍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