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경찰서는 오전부터 최씨를 심문하느라 분주했다. 어제 깜빡 잠이 든 켄타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고, 덕분에 최씨는 몇 시간 동안 더 불안감에 휩싸여 취조실에 들어올 때부터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취조실 의자에 앉자마자 최씨는 켄타와 호성을 향해 빌기 시작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손발이 의자에 묶인 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최씨는 애걸복걸했다.
간밤에 유치장에서 박씨와 정씨에게서 나는 피비린내와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미 최씨는 자신을 놓아버렸다.
“죽을죄를 졌다라.. 순순히 자백하는 건가?” 켄타가 하품을 하며 최씨에게 물었다. 키무라를 대신해 취조실로 들어온 호성은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연신 하품만 해재꼈다.
“네. 제가 다 죽였습니다요.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좋아. 그럼 어떻게 죽였는지 설명해 봐.” 켄타가 담배를 찾으며 물었다. 그동안 얼마나 피워댔는지 담뱃갑이 텅 비어있었다. 호성이 얼른 눈치채고 자신의 담배를 켄타의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였다.
“네? 오.. 오타놈을 그냥 칼로. 칼로 마구 찔렀습니다!”
“칼이라.. 그래서 어느 부위를 몇 번이나 찔렀지?”
“가슴과 배, 여기저기 제가 너무 흥분해서 보이는 대로 찔렀습니다!”
최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켄타도, 호성도 알았다. 하지만 자백을 시작한바, 켄타는 속도를 내어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인력거 김씨와 날일 하며 먹고살던 그 두 명도 다 네놈이 한 짓이지?”
“네?? 저.. 저는 오타만.. 아닙니다! 네! 네! 제가 다 죽였습니다!”
최씨는 정말로 자신이 죽였다는 듯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렀다.
“좋아. 왜 죽인거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을리는 없지 않은가?”
“그.. 그건..” 머뭇거리며 최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놈들이 네게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인력거 끌던 김씨는 숙희 때문에 늘 자네를 괴롭혔고 말야. 그렇지 않나?” 켄타는 이제는 미소까지 지으며 최씨에게 나긋하게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 놈들이 제게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놈들을 찔렀습니다!”
“좋아. 좋아. 그래 진작에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걸 말야.” 켄타는 취조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문서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호성은 최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최씨는 모든 걸 포기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뭐 할 말은 없나?” 켄타가 최씨를 향해 물었다.
“제.. 제가족들은..” 가족이란 단어에 최씨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걱정말게. 자네는 이제 몇 가지 절차 뒤에 형무소로 옮겨질 테니, 그땐 면회도 할 수 있겠지. 자네가 살아있는 시간 동안 말야. 하하하핫. 원한다면 여기서도 만나게 해 줄 수는 있지. 그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네.”
최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호성. 이걸 하야시 경시님께 전해주도록 하고. 나는 잠깐 몸이나 좀 씻고 와야겠어.” 기지개를 쭉 켜며 켄타가 말했다.
“네! 경부님!” 호성은 켄타가 전해준 문서를 들고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취조실을 나서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호성을 불렀다.
“김순사님!!!!”
숙희는 호성을 보자마자 달려가 호성의 품에서 울기 시작했다. 호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경찰서 내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관심 있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얘! 여기 경찰서야! 이게 무슨 짓이야.”
수진은 호성에게 안겨있는 숙희를 떼어내며 핀잔을 줬다.
숙희는 호성에게서 떨어지면서도 한 손은 여전히 호성의 옷자락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야겠구먼. 나 지금 경부님이 시킨 일이 있어서.” 호성은 숙희와 수진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켄타가 준 서류를 들고 하야시 방으로 갔다.
켄타도 취조실 밖으로 나오며 숙희와 수진을 만났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의 만남인 데다 서럽게 우는 숙희 모습을 본 켄타는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수진을 바라보았다.
“박마담이 여긴 무슨 일이지?”
찢어진 눈매로 수진을 보며 켄타가 물었다.
“그게.. 숙희가 어젯밤에 일이 조금 있어서..”
수진은 경찰서의 무거운 공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오전부터 여기에서 이러고 울고 있는거야?”
“그러니까 어제...”
수진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숙희는 옆에서 여전히 울고만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숙희를 보며 켄타는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만 그럴 뿐 오히려 더 역정을 냈다.
“시끄럽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울거면 나가서 울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말이야!”
켄타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담배를 사러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