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켄타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피비린내를 맡는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거라 생각한 켄타는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내 들고 주위를 살폈다.
“경부님!” 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야! 숙희는!” 켄타는 호성을 보고 소리쳤다.
“이선생을 쫓다가 여기까지 왔구만요. 경부님이 이선생 잡아오라고 하셔서...” 호성은 느릿느릿 대답했다.
날이 어두워져 호성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웃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 무슨 일이 생긴거지?”
“와보니까 이선생이 죽어있구먼요.”
“뭐야? 누가. 누가 그런거지?”
“숙희가 한 짓인 거 같구먼요.”
“숙희! 숙희는 어디에 있나!”
“저기 나무에 묶어뒀구먼요.”
켄타는 나무에 숙희가 있음을 확인한 후, 이홍수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이홍수의 시신은 이전의 시신들보다 더 참혹했다. 이전의 시신들은 심장을 관통한 하나의 구멍과 둔기로 내려친 머리의 상처들이 있었는데, 이홍수는 날카로운 도구로 수십 군데를 마구 찌른 상처가 있었다.
“이 방은 누가 청소를 해놓은 거지? 이 정도의 상처라면 온 방이 피로 물들었을 텐데. 그리고 이 상처는 그놈의 방식이 아니야.”
“그놈이 누군감요?”
“이때까지 살인을 저지른 그 살인마 말이다.”
호성은 아무 말없이 품속에 손을 넣은 채 켄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켄타는 그런 호성의 눈빛을 느끼지 못한 채 숙희에게 걸어갔다.
“정말 네가 한 짓인가?” 숙희를 바라보는 켄타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
“네. 제가 그랬어요.” 차마 켄타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숙희는 대답했다.
“왜 그랬지?”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일단은 경찰서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호성 숙희를 풀어줘.”
“네 그렇게 하겠구먼요.” 호성은 숙희의 묶인 줄을 풀면서 숙희 손에 품에 있던 물건을 꼭 쥐어줬다.
여자들이 쓰는 비녀였다.
숙희는 물끄러미 호성을 바라보았지만, 호성은 숙희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숙희에게 묶인 줄을 다 풀었다.
“호성. 내가 숙희를 데리고 갈테니, 너는 먼저 경찰서로 돌아가 여기로 인원들을 보내도록.”
“그렇게 하겠구먼요.”
“김순사님!” 숙희가 할 말이 있는 눈빛으로 호성을 바라보았다. 호성은 숙희의 부름에 답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숙희...”
켄타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넣고 숙희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한 번도 표현할 수 없었고,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라 생각했기에 켄타는 진심을 담아 숙희를 끌어안았다.
“경부님 이러지 마세요.”
갑작스러운 켄타의 행동이 숙희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을 늘 무시하고 차갑게 대하던 켄타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숙희는 호성이 쥐어주었던 비녀를 꽉 말아쥐었다.
“도망가.”
켄타는 숙희를 안았던 팔을 풀고 숙희에게 말했다.
“저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여기에 남을거예요.”
숙희는 켄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가지 않는거지! 여기에 있으면 너는 살인범이 된단 말이다!”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해서 제가 사람을 죽인 일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평생을 도망 다니며 살고 싶진 않아요.”
“일단은 피해있어! 그 후엔 내가 알아서 조치할테니!”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나는 너를...”
켄타가 머뭇거리는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켄타의 등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며 켄타의 머리를 돌로 내리쳤다.
“경부님!” 비명을 지르며 켄타 뒤를 보니, 돌을 든 호성이 서있었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호성은 신난 듯이 켄타를 끌고 감나무 쪽으로 갔다.
“순서가 틀렸구먼... 그걸 먼저 썼어야 되는디.” 호성은 숙희에게 쥐어준 비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성은 나무 주위에 흩어져있던 이불과 헝겊으로 켄타를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나서 부엌에서 물을 떠 와 켄타의 얼굴에 뿌렸다. 숙희는 낯선 호성이 무서웠지만, 그의 곁을 떠날수는 없었다.
“으윽...” 켄타는 고통이 심한 듯 인상을 찌푸렸고, 호성은 그런 켄타 얼굴에 담배연기를 후 하고 내뱉었다.
“아프쥬?”
“너였냐?”
“뭘 말인감요?”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들이 네가 한 짓이냔 말이다.”
“그런셈이쥬.”
“뭐야?”
호성은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 한번 켄타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켄타는 호성의 뒤에 서있는 숙희를 바라보았다.
“숙희는 보내줘.”
“숙희를 어디로 보내는감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보내주란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경부님 무슨 말하는 건 감요. 숙희는 여기서 저랑 같이 살 거구먼요.”
“뭐!”
“여기서 지랑 같이 살기로 했구먼요. 한 대 피우시겠는감요?” 호성은 켄타에게 담배를 권했다.
켄타는 한숨을 내쉬며 그러겠다고 했다. 호성은 켄타의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다.
“참 덥쥬?”
“무슨 개소리야?”
“날이 참 덥잖아유. 그때도 이렇게 더웠었쥬.”
“무슨 소릴 하는거야!?”
“이제 한 이십 년쯤 됐을라나. 여기가 우리 집이었구먼요. 울 엄니랑. 엄니.. 엄니가 보고싶구먼요.” 한줄기 눈물이 호성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니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는디, 그 망할 영감 때문에. 그 영감이 다 망쳐놓았구먼요.”
“뭐?”
“경부님은 여기 오기 전이니까 잘 모를거구먼요. 지가 어릴 적에 사람들이 길에 나서서 엄청스레 만세를 불러 재꼈구먼요. 그러면 나라를 찾는다나 어쨌다나 지는 어렸고 엄니는 혼자서 지를 키웠으니까 세상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구먼요. 하루 먹고 사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으니까. 근데 그 망할 영감이 만세 부르러 나가지 않으면 일도 안 준다는 거 아녀유, 엄니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냥 나가서 시키는 대로 했구먼요. 그런데.. 그런데..” 조용히 호성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굵어졌다.
“엄니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순사 놈들이 집으로 와서 울 엄니를. 지가 보는 앞에서... 그랬구먼요. 짐승 같은 놈들이. 흑흑. 그 길로 지는 마을을 떠났구먼요. 여기저기 떠돌면서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구먼요. 그런데 살다보니 지가 왜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더구먼요. 마음도 답답하고 엄니도 보고싶고 그래서 다시 마을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지를 못 알아보지 뭐예유. 그래서 처음엔 그 엄니에게 만세를 부르라고 했던 그 영감을 잡아야겠다 생각했쥬. 여전히 그 영감은 독립운동인지 뭐시긴지 하고 있더구먼요. 지가 먼저 그 영감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때 거기서 경부님을 만난거쥬.”
“그 영감은 잡혀서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그 영감은 죽었는데 왜 너는 계속 살인을 하고 있지?”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더구먼요. 울 엄니도 그렇게 괴롭게 떠나고, 지도 지옥 속을 살고있는데 여전히 웃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더구먼요.”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사람들이 웃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면 복수 때문인가?”
“그런 거창한거는 모르겠고. 그냥 날도 덥고, 심심하기도 하고. 그 놈들이 웃는 모습도 꼴뵈기 싫고. 그런거쥬.”
“죽은 사람들이 네 놈한테 무엇을 했길래. 도대체 사람을 죽일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이야.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날품 팔던 그 놈들은 죽어 마땅했쥬. 울 엄니를 욕보인 놈들이니까.”
“뭐?”
“지가 들었구먼요. 울 엄니가 그렇게 당할 때 그 놈들이 봤다고. 이 집을 지나가면서 하는 얘기를 들었구먼요. 지는 어려서 힘이 없었지만, 그 놈들은 그때 울 엄니를 도와줄 수도 있었을 것인디..”
“그 사람들이 네 어머니를 도왔다면 그 자들도 위험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나?”
“어른들이였잖아유. 어른들이면 도와줬어야쥬.”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어른이면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건가!” 김씨는 왜 죽였나.”
“그놈이 비녀를 사는걸 제가 봤구먼요.”
“비녀?”
“잠깐 이리줘봐.” 호성은 숙희의 손에 있던 비녀를 가져왔다.
“이게 울 엄니가 쓰던 것인디. 이걸 보고 있으면 엄니 생각이 나는구먼요.”
“그거랑 김씨를 죽인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엄니가 생각이 났다니께요. 그놈이 비녀를 사는 모습을 보는 바람에 잊고 있던 울 엄니가 생각이 났구먼요. 그 짐승같은 놈들이 울 엄니에게 한 짓이 생각이 났구먼요. 그래서 죽여버렸쥬. 하하하하. 오타도 궁금하쥬? 오타 그놈은 진짜 짐승였구먼요. 지가 어렸을 때도 동네 아낙들을 건드렸는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지 뭐예유.”
“김노인의 양자는 왜...” 켄타는 점점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저런 사소한 이유로 사람을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노인은 그때 죽은 그 영감의 오랜 친구구먼요. 내게서 울 엄니를 빼앗아 갔응께, 지도 그 영감의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거구먼요. 흐흐흐. 그런데 경부님은 왜 그 사람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감요? 죽은 사람이 네 명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건감요?”
“뭐??”
“아무도 관심이 없구먼요. 사람들이 몇 명이 죽어 나가건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 신경도 안 쓰는구먼요. 사람이 죽어 나가면 그 자리가 돈이 되는지 안되는지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이 와서 채우고, 또 채우고, 사람은 넘쳐나는구먼요. 그깟 몇 명 죽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구먼요. 글고 올해 무지하게 덥잖아유. 원래 이렇게 빨리 죽일 계획은 아니었는데, 날이 덥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뭐가 재미난 일이 있어야쥬.”
“뭐? 심심해서 사람을 죽였단 말이냐?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그래서 도대체 왜 사람을 죽인거란 말야! 너랑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히히히히. 경부님은 그게 참 문제란 말이예유.”
“뭐야?”
“세상 사는데 뭐 그리 어렵게 사는감요. 뭐 할 때마다 이건 이래서 이렇게 해야하고 저건 저래서 저렇게 해야하고. 그렇게 살면 재미가 있는감요? 히히히히. 지는요. 그냥 그렇구만요. 심심하니까. 또 이걸 하면 재밌으니까. 이유는 니미럴. 히히히히 그냥 하는거구만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켄타는 호성을 바라보았다.
“버러지 같은 자식!” 켄타는 호성의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호성은 얼굴에 묻은 침을 닦으며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한 손으로 돌멩이를 집어들고 사정없이 켄타의 머리를 내리쳤다.
“니들도 재밌어하잖아. 니들도 맨날 사람 잡아다 놓고 바늘로도 쑤시고, 물에도 담그고, 고춧가루도 뿌리면서 니들도 즐기잖여! 뭐가! 뭐가 버러지여!”
호성은 평소와 빠른 말투로 켄타에게 말하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호성의 모습을 바라보는 숙희는 너무 무서워 다리가 덜덜 떨렸다.
“히히히히히 재밌잖여. 이것 봐 재밌잖여! 히히히히히”
“수..순사님 이제 그만!” 숙희는 호성을 팔을 붙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왜 그러는거여? 숙희는 재미가 없는거여?”
호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숙희를 노려보았다.
“아! 같이 하고 싶은거구먼.” 호성은 비녀를 다시 숙희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를 찔러야 되는구먼.” 켄타의 심장 부분을 손으로 짚으며 숙희에게 말했다.
“순사님.. 저.. 저는 못하겠어요. 어떻게 제가 경부님을...”
“뭐여 왜 못하는거여? 같이 하기 싫은거여? 그럼 이리 줘 내가 하겠구먼.”
“아니에요! 제가 하겠어요!” 숙희는 비녀를 손에 쥔 채 덜덜 떨며 켄타 앞에 앉았다.
아까 이홍수를 찌를 때는 살기 위한 본능과, 그에 대한 분노, 적개심이라도 있었는데 켄타에게는 나쁜 감정이 없었다. 켄타는 숙희에게 친절하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 호성의 재촉하는 눈빛을 느끼고 숙희는 마음을 다잡았다.
비녀를 높이 쳐들고 켄타의 심장을 향해 힘껏 내리꽂았다. 아까는 느껴보지 못한 사람의 가죽을 뚫는 느낌,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튀고, 손으로 흘러내렸다.
숙희는 켄타의 심장을 찌른 비녀에서 손을 떼고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 얼굴이 우는 얼굴인지 웃는 얼굴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기묘한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였다.
호성은 그런 숙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순서를 바꿔서 해도 재밌구먼. 같이 하니까 더 재밌구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