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위해 만난 자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분위기에서 이제는 점점 핑크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옆자리로 온 K는 몸을 나에게 밀착하고 애정 공세를 펼쳤고 나도 모르게 점점 몸이 K에게 기울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소울메이트의 도움으로 나와 K를 조금씩 이해하고, 나의 연애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 깨달았다고 믿었었다. 이번에는 매번 이별을 하면서 겪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었으나, K의 속삭임에 다시 악순환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한 달 후 대만 교환학생을 갔고, K의 깜짝 대만 방문에 관계의 회복을 하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짐작을 했겠지만 우리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번 깨진 유리잔은 아무리 다시 붙여도 온전한 유리잔이 될 수 없었다. 처음 유리잔이 깨졌을 때 잃어버린 유리조각 때문에 다시 붙여도 유리잔에 구멍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로의 어떤 추억도 제대로 담을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잃어버린 유리조각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별은 아프고 슬펐으나, 소울메이트의 도움과 한 여자와 두 번의 이별을 통해 깨달은 게 있었고, 이는 나의 연애 패러다임을 극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고, 변한 사랑의 감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마음이 식은 본인도, 상대의 마음이 식어 고통받는 사람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으며, 사랑의 감정이 식었다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에 식은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게 되면, 관계의 막장까지 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며,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마지막에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기억해야 하는 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매번 바퀴벌레로 변신했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연애 상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K를 감당할 수 없었다. K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K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이 너무 쉽게 바뀌는 것이 이해가 안 되어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K를 연민했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했을 때 겪어야 할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연애만 하면 질퍽거리던 나는 K와의 두 번의 이별을 통해 연애와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찌질하게 차여서 바퀴벌레로 변하는 형벌은 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연애만 하면 질퍽거리던 나를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나로 기억하며 그리워할 수도 있을 거라는 자기 긍정을 해보며, 연애만 하면 질퍽거리는 나와도 이제 그만 이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