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를로스 안 Sep 02. 2022

8. GLOBAL 연애


감당할 수 없는 K와 이별을 하고, 연애만 하면 질퍽거리는 나에게도 이별을 고했으나, 진짜 이별할 수 있을지는 실전의 경험을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연애의 패러다임 변화를 증명해 줄 A를 한국과는 많이 떨어진 호주에서 만났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무역을 전공했는데 영어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집안 형편을 고려해 호주에서 3개월 동안 막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은 비싸서 다닐 수 없었고, 일본에서 20년 영어를 가르치다 고향으로 돌아온 MrR.RAY라는 호주 선생님에게 하루에 2시간씩 소규모 그룹의 일본, 한국 친구들과 함께 영어를 배웠다.


거기에서 A를 만났다. 속칭 갑빠라고 하는 가슴 근육에 자신 있었던 나는 당시 유행했던 가슴이 많이 패인 V넥 티셔츠와 카키색 카고 바지를 입고 수업에 참여했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A는 색조가 짙은 화장을 했고, 부끄러울 땐 습관적으로 웃는 모습이 SEXY하게 느껴졌다. A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짙은 쌍꺼풀과 갈색 머리, 가슴이 훤히 보이는 V넥 티셔츠를 보고 철없는 일본 남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일본 양로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A는 호주에 와서도 양로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CARE 하는 일을 했다. SEXY한 외모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CARE 하는 A의 반전 모습에 끌렸다.


나는 A에게 나도 양로원에서 일을 돕고 싶다고 했고, 봉사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 부탁했다. A는 내가 철없는 일본 남자 애인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고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나의 반전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랑은 반전을 타고 온다!


비록 나는 호주 양로원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외국 노동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양로원에서 일할 수 없었지만, A에게 좋은 점수를 얻었고 그 호감을 BASE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YAMMY라는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했다. 영어가 둘 다 원활하지 못했던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에 많이 웃었다. 호주 캥거루 고기 맛이 느끼하다고 웃고, 네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웃고,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목욕을 씻겨 드릴 때 가끔 할아버지의 소중이가 기상을 해서 난감하다고 웃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그 부족한 만큼 웃음으로 채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처음 우리 관계는 너무 가벼워서 웃음 말고, 슬픔이나 우울과 같은 무거운 감정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이 지나 우리의 영어 실력은 꽤 늘어서 그만큼 가벼운 웃음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서로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고, 언젠가는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자주 볼 수 없을 때 느낄 슬픔도 같이 먼저 느끼곤 했다.


A는 심한 편두통이 있었다. 편두통이 찾아오면 함께 있는 동안에도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A는 수업을 들을 때 일본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보았다. 처음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A는 수업시간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 사람 그룹 내에서 한국인과 사귄다는 것이 떳떳한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A가 일본 사회에서 느꼈을 불안과 지나친 배려로 받을 소외가 느껴졌다. 가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 날이면 A는 그걸 이별로 받아들이곤 했다.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장난치는 나에게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더니 이내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슬픔을 이고 가는 일이다.

이전 07화 7. 이별을 고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