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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를로스 안 Sep 04. 2022

10. 사람으로 만나 사랑이 된다

A와 호주에서 1년의 만남 후, A는 일본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상은 했으나, 원할 때 직접 보고 만질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년간의 연애를 통해 기쁨만큼 슬픔도 감당할 사랑 CREDIT을 쌓았다. 떨어져야 한다는 슬픔의 감정을 마주하고 슬퍼했고, 그 후의 연애에 대해서 계획을 만들어갔다.


그 후로 우리는 서울 경복궁에서, 오사카 캐슬에서, 상해 신천지에서 다시 만나 압축된 사랑을 했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를 이어갔다. A에게도 나에게도 그전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오랜 연애를 했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만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 헤어진 후에도 몇 년 동안은 좋은 친구로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고, 지금은 삶의 한 칸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A와 사귀는 과정 중, 관계에 자신 없어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나를 아주 자세히 진지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마음과 감정은 잘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데 이를 세련되게 표현할 기술이 부족했고, 특히 싸우거나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때면 관계에 대해 한없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A를 보면서 나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관계에 대한 불안, 자신 없음이 나를 바퀴벌레로 변신하게 만들었고, 연애만 하면 질척남이 되게 했다.


A가 안쓰러웠고, 내가 너무 불쌍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평생의 욕망에 대해 우리는 잘 다루질 못했다. 그저 가끔은 불타는 본능에 맡겨 한없이 서로에게 빠져 들었다가 그 뜨거움에 화들짝 놀라 말없이 도망치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서툴렀던 우리의 연애는 서로의 아픈 곳을 발견하고 아팠지만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진심으로 응원했고, 조금씩 서로의 관계에 자신감을 쌓아갈 수 있었다.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 친해지고 나는 어떤 사람이지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 내가 빛이 되고 어둠이 되는지 말이다. 나에 대한 마음공부를 해나가면서, 다음엔 사랑하는 상대를 관찰하고 연구한다. 그(그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고 알아간다. 어떤 일을 할 때는 활짝 피는 데, 어쩔 때는 바로 시들어버리는지 파악해간다.


상대를 알아갈수록 관계에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녀 S는 모든 일의 기준이 높다 보니 잘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작 자체를 하지 못한다. 노래를 하면 가수처럼 불러야 하고, 중국어를 하면 원어민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는 생각보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눈앞의 일이 충분히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면, 나는 S에게 도전해보자고 응원을 하며 S 뒤에서 두려움을 함께 버틴다. S가 느낄 부담을 나누어 갖고, 우선 먼저 시작만 해보자고 설득한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시작이 왜 반이라고 말하는지 S와 나는 절감하게 된다.


연애만 하면 질퍽거리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랑하기로 운명 지어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는 처음 모난 사각형인 사람으로 만나서 부딪히며 싸운다. 자신이 모난 줄 모르고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그러나 사랑이 상처를 품어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의 모난 부분에 부딪혀도 물러서지 않고 다가간다. 관계에 자신감이 생기면 사랑하는 사람의 모난 부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어루만진다. 모난 사각형이 둥글둥글 변해 사랑이 될 때까지 말이다.


사람으로 만나 사랑이 된다. 내 사람,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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