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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를로스 안 Sep 14. 2022

12. 참을 수 없는 그녀의 무거움

OT에서의 빛나는 연기로 공헌을 인정받아 중문과 1학년 과대가 되었다.


과대로서 개강파티를 준비했고, 거기에서 S를 처음 만났다. 개강파티에서 만난 S는 회색의 캐주얼 정장 차림이었고, 모범생보다는 놀 줄 아는 세련된 도시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순박하고 소심한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차갑고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과대가 된 장점 중의 하나는 과의 모든 여학생들의 연락처를 확보할 수 있었고, 학교 행사와 공강 정보 등 여러 가지 핑계로 연락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까칠해 보이고, 그다지 학과 행사에 협조적이지 않은 S에게 호감을 가지기에는 내가 호감을 가진 다른 여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S 또한 순박하고 재미없는 오스트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랬던 우리에게 아주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맞이하는 대학 축제에서 우리 과는 생뚱맞게 팥빙수를 직접 만들어 팔았고, 번 돈으로 저녁에 고기와 음식을 시켜서 술을 마셨다. 타과는 주점으로 적자를 보는 과가 많았는데, 우리 과는 팥빙수를 만들어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강매하고, 연예인 축제 행사에 줄을 선 목 타는 학생들에게 팥빙수를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축제 마지막 날도 번 돈으로 삼겹살과 소주를 사서 배가 터지게 먹고 마셨다. 밤이 좀 늦은 시각, 선배들의 술 심부름을 하면서 술자리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나에게 여자 동기들이 찾아왔다.


여자 동기들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S를 가리키면서 내가 반드시 집에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했다. 한 시간 전까지 선배들과 거침없이 달리던 그녀였다. S의 주행 속도가 높아진 만큼 선배들의 술 심부름 속도도 빨라져 나는 짜증을 참고 있었다.


여자 동기들은 함께 술을 마신 예비역 남자 선배들에게 S를 맡길 수가 없다고 하며, 과대로서 반드시 내가 S를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주어야 한다는 부탁 아닌 강요를 했다.


과대로서의 책임감과 예비역 남자 선배들의 붉고 께름칙한 얼굴을 보며 갑작스러운 정의감에 불타올라 승낙을 했다.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택시에 태워 S를 호송했다.


처음 업어보는 술 취한 여자의 무게는 수치심을 줄 정도로 무거워 전신이 땀범벅이 되었다. 택시 안에서 S는 자주 토를 하려는 자세를 취해 나를 당황시켰다. 다행히 사고 없이 안전하게 집 앞에 도착했지만, 택시 안에서 주소를 알기 위해 S 아버님과 어색한 통화를 했고, 집 앞에서 만난 S 어머님의 호통에 혼쭐이 났다.


여자에게 이렇게 술을 많이 먹이면 어떻게 하냐고 호통치는 S 어머니 앞에서 “ 자기가 좋아라 먹은 거예요”라는 말은 할 수 없었고,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고 뒷걸음질 쳐 나왔다.


억울했지만, 할 일을 다했다는 뿌듯함과 진상 부린 S를 놀려 먹을 기대감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나는 S의 이름 앞에 수식어를 정했다. 진상!


그때는 몰랐다. 술 취한 S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던 사건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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