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축제 마지막 밤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불쾌한 일을 디테일하게 말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어서, 그날 밤의 디테일은 내 안에만 영원히 남게 되었다.
S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밥을 사겠다고 했고, 단둘이 밥을 먹으면서 친해졌다. S는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을 소중히 여겼고, 친오빠와 관계가 돈독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편이 아니어서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간 오빠를 지원해주었다.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시험을 봐도 4년 내내 거의 장학금을 탈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사랑은 반전을 타고 온다.
까칠하고 부족한 거 없이 살아 보이던 S가, 사실은 항상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고, 가족에게도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오해했다는 미안함이 호감으로 급 반전했다.
S는 멀리서 보면 까칠하고 잘 노는 학생이었으나, 가까이서 보면 열심히 하루하루를 버티는 나와 별다르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가까이서 보고 알아가면서 점점 S를 좋아하게 되었다. S의 이름 앞에 수식어를 바꿨다. 진상은 가끔은 모르겠지만 본래의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S에게는 “진국”과 “볼매(볼수록 매력)”가 어울렸다.
S와 여러 번의 데이트를 했고, 매번 데이트 장소로 나갈 때마다 오늘은 반드시 고백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으나,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열 번째 데이트 장소는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롤러스케이트장이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지 못하는 S가 잔뜩 긴장한 채 내 손과 팔에 매달릴 장면을 상상했다. S에게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고백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백을 하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데이트 장소에 갔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롤러스케이트장이 수영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황해서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S와 공원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데이트를 망쳤다.
마치 열 번째 데이트가 마지막 고백의 찬스였다는 듯, 그다음부터 S는 데이트 신청에 연기의 연기를 거듭했다.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하고 스무 살 여름방학의 종료와 더불어 우리는 친구로 남게 되었다.
스무 살의 나는 삶에 대한 열정은 넘쳤으나, 사랑과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 투박한 오스트(원시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S가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서른 살까지 우리의 삶의 방향은 너무나 달라서 각자 치열하게 살아왔고, 편지가 인연의 끈을 연결시켜주었다.
편지의 시작은 언제나 S를 수식하는 진국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