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부터 친구로 지낸 10년 동안 군대에서 또는 해외에서 S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언제나 S 이름 앞에 “진국”으로 편지를 시작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S가 스스로 진국임을 느끼게 해서 격려와 응원을 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S가 진국이라는 말을 만날 때마다 너의 진가를 알고 있는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서른 살에 S를 연인으로 만나면서 편지의 시작은 “진국”에서 “사랑하는”으로 발전했다.
S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감정을 만지는 어떤 말에 닿으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곤 했다. S의 생일날, 손으로 쓴 편지를 꺼내서 육성으로 편지를 읽어 주었다. “사랑하는” 다음에 S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벌써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직 편지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 쌓인 감정들이 먼저 뛰어나왔다.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서른 살의 나는 S의 곁에 함께 할 수 있었을까?
S가 임용고시 준비에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년 동안 연락을 못했었다. 나는 취업에 어렵게 성공했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때 S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통화가 안되더라도 괜찮을 거 같다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예상외로 S는 너무나 반갑게 전화를 받아 주었고, 며칠 후에는 회사 앞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그때가 서른 살, 나는 지금의 무역 회사에 입사를 했고, S는 임용고시에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에 최종 합격을 해서, 서울에서 오산에 있는 학교까지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마지막 1~2년은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어둡고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시험에서 다행히 합격을 하여 어두운 터널을 겨우 통과했는데, 그때의 시절을 떠올리면 S의 마음이 많이 사무치는 거 같았다.
S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나이가 들었고, 관계를 대하는 방식도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스무 살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몰라 S의 눈치를 보곤 했는데, 서른 살이 되니 S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이야기를 그 위에 얻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서른 살이 주는 콘텐츠의 풍부함과 그동안의 연애를 통해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S는 술을 잘 마시고, 나는 못했는데, 상사에 입사를 하면서 술 단련이 되어 나의 주량이 그녀를 넘어서게 되었다는 점도 달라진 점이다.
고기를 구우며 소주를 마셨는데, 인당 소주 2병이 넘어갈 때쯤 우리는 예전의 대학 동기들은 지금 뭐하고 사는지 아는 만큼 이야기를 했고, 연달아 그 동기의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를 말하며 많이 웃었다. 분위기를 이어받아 2차에 갔다. 2차에서 맥주 오백을 한잔 마시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더니, S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좀 취한 거 같다 느끼고 있었을 때였다.
S를 깨워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S는 택시 안에서 내 어깨에 기대어 단잠을 잤다. 스무 살의 축제 마지막 날이 생각났다. 술 취한 S를 업어 집에 데려다주면서, 내가 업은 것은 그녀 삶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이란 “삶의 부분을 업는 일 같다” 어렴풋이 느꼈다.
10년 전처럼 S가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으나 많이 취한 상태였고, 10년 후 오늘 그녀의 삶을 업고 싶었다. 그날처럼 집까지 그리고 오늘 밤의 기억도 책임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S를 집에 데려다준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연인으로 발전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S가 나를 남자 친구로 받아들인 건 두 가지 이유였던 거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오랫동안 친구로 알아오면서 가지는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예전의 투박하고 착한 오스트(원시인)에서, 외모를 가꾸고 술을 즐기며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나를 보고 매력을 느꼈던 거 같다.
스무 살의 나는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남자 조연이었다면, 서른 살의 나는 S의 인생이라는 영화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남자 주인공의 자격을 얻었다.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