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열두째 날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수는 있지만, 요즘처럼 습하고 더운 날엔 정말 힘들다. 작년에 이사 온 이후로 남편과 나는 일이 있을 때 서로 데려다주곤 한다.
오늘은 남편이 요로결석 치료 경과를 보러 병원에 가는 날이라, 전철이 편하겠다며 아침 9시에 내가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줬다. 나도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11시쯤 나가야 했는데, 남편이 다시 나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남편이 병원에서 10시쯤 돌아온다 해서, 또다시 데리러 나갔다. 집에 들렀다 나가면 1시간도 안 돼서 다시 움직여야 하니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냥 일찍 백화점 약속 장소로 가기로 마음먹고, 10시에 남편과 빠르게 ‘체인지’해서 지하철을 탔다.
급히 나오느라 화장도 못 하고 완전 쌩얼이었다. 일부러 거울은 안 봤지만,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얼핏 보고는 흠칫 놀랐다. 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눈썹도 그리고 립스틱도 바르니, 그제야 조금 봐줄 만해졌다.
그렇게 집이 아닌 곳에서 화장을 하다 보니, 어릴 때 엄마 몰래 화장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산 화장품으로 얼굴을 뽀얗게 바르고, 아이섀도에 진한 립스틱까지 바르고 놀러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재미있던 그때 그 시절, 부모님께 혼날까 봐 무서우면서도 어떻게든 놀러 다닐 궁리만 하던 철없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때는 말도 참 안 듣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도 없고, 그야말로 낙엽만 굴러가도 배꼽을 잡고 까르르 잘도 웃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웃고 넘기지만 문득문득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눈치 볼 일도 없는데, 정작 딴짓할 거리가 없네.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게 아니라…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일지도.
가끔은 별것 아닌 엉뚱한 짓으로 깔깔거리며 웃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