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시작되는 자리, 여행을 떠나요

백일백장 쉰다섯

by 민희수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다음 주 여행을 앞두고 온라인 면세점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는 여행을 가도 면세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언니들 선물로 립스틱이라도 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큰언니는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챙겨주었고, 작은언니는 리코를 맡아주기로 했으니 마카다미아만 사다주기에는 왠지 미안하다.

부피도 작아서 부담 없는 립스틱만 사려 했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 가서 매고 다닐 크로스백이 필요할 것 같고, 오랜만에 새 선글라스도 하나 갖고 싶다. 가격을 비교해 보니 역시 면세점이 싸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지웠다가를 벌써 나흘째 반복 중이다. 원래 아이쇼핑이 제일 재미난 게 아닌가. 빨리 결제해 버리면 고민이 사라지겠지만 그 재미 또한 포기하기 어렵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여행 계획은 짜지도 않고 쇼핑 고민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밤에는 반드시 결정을 내리고 더는 미련을 두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사흘 앞으로 다가온 여행을 온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예전엔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 물으면, 망설임 없이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김영하작가처럼 나도 이번 생은 원 없이 쏘다니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예전에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역마살이 여러 개 있다는 말이 어쩐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자꾸 멈칫거리며 나아가질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익숙한 일상에서는 고개를 잘 들지 않게 된다. 신호등에 멈춰 서 있어도 핸드폰을 보거나 저녁거리를 살만한 곳만 둘러볼 뿐이다. 하지만 여행지는 다르다. 낯선 곳에서는 길을 찾고, 풍경을 눈에 담고, 다양한 사람들의 들뜬 에너지를 느낀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새롭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순간이다.


낯선 길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을 일상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싶다. 앞으로의 삶은 계획된 코스만 따르지 않고 때로는 길을 잃을 용기를 내며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듯 자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세밀한 계획보다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듯 가볍고 자유롭게 다녀와야겠다.

일상이 곧 여행이듯 여행도 일상처럼 편안하게 즐겨보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계획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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