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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Nov 07. 2023

별을 삼키자, 하늘이 보였다

#1


때때로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야만 한다

아니면 스스로를 꾸역꾸역 삼켜야만 하는 것이다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니다 보면 늘 움츠린 모양새로 걷게 된다 새우처럼 등이 굽는다

진해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 되면 몰락한 식민지로부터 물려받은 고풍스러운 구식 건물들은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눈부신 광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는 새하얀 정복을 입고 그 거리를 백 번도 더 걸었다

그 시절의 기억들은 내게 알 수 없는 서러움을 안겨주곤 한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이 부시다는 말을 싫어했다 

안구건조증이 있는 탓에 봄만 되면 길을 걷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눈물을 훔쳤다


진해는 모항(母港)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하늘을 자랑으로 하는 지역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처럼 넓고 맑은 하늘은 보질 못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들려오는 초소에서 저녁놀이 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하늘은 온갖 물감들을 마구잡이로 섞어대는 어린아이의 팔레트처럼 일렁였다

구름이 봉선화나 제비꽃의 색으로도 물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 테지

그 섬에선 디딜 수 있는 바닥보다는 하늘과 바다의 비중이 훨씬이나 커서,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하늘과 바다가 아주 먼 곳에서는 하나가 된다는 것을, 전갱이의 아랫배는 바늘처럼 뾰족하다는 것을,

낚아 올려진 복어가 미끼를 씹을 때 내는 뽀독거리는 소리를

젖은 바위 틈새에 깊숙이 붙박인 거북손을 캘 때면 나는 무언가 아주 거대한 것과의 악수를 생각한다.

그건 말로도 글로도 캐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2


입질이 온다는 느낌, 그거 참 대단하더라고 락 장치도 고장 난 싸구려 낚싯대를 쥐고,

말보로를 연신 빨아대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다리를 바라보았지

하늘은 이미 막을 내리고, 바람도 없이 담배연기는 잘만 흩어지데.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하다,라고 느낄 그때 즈음인 거야.

저쪽에서 막 잡아당기는 느낌. 이리저리 발버둥 치듯, 어쩌면 장난스럽게 보채듯, 그런 느낌.

잠깐,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


한 뼘밖에 안 되는 전갱이가 나를 잡아당길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수면 위로 올라와, 마구 날뛰는 녀석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릴 때의 촉감

성미가 급한 녀석들이라 널찍한 대야에 담가놓아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지

그날 밤에는 하늘을 실컷 바라봤어

난생처음으로 바다로부터 저녁 식사를 대접받은 날 

어쩌면 하늘을 바라보기가 퍽 미안해선지도 모르고.

찰싹, 찰싹, 온종일 같이 있었던 친구는 오밤중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지

녀석이 우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고

입술이 바늘에 걸린 것처럼, 퍽퍽하고 멕아리 없는 울음소리


나는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어. 

유튜브에서 본 것 같은데, 물고기는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던데 흠, 흠.

별들이 참 많은 밤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물고기는 정말로 아프지 않을까?

어쩌면 우린 모두 저 위에서 던진 낚싯바늘을 냉큼 삼켜버린,

정말로 불쌍한 족속들은 아닐까? 




                                                                                                                           그리운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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