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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우 Sep 02. 2022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

티브이에 나오지 않아도 휴대폰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자신을 알리고 인플루언서도 될 수 있는 이 시대, 나같이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적어 보일 정도다.

근사하게 돋보이는 것들, 눈에 띄고 시끄러운 것들이 너무나 도처에 널려 있어 그것들이 평균치로 보일 때가 있다.


얼마 전에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아이들에게 “너는 특별하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오히려 아이들의 용기를 제한한다.

오히려 “아무도 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렴.” 하고 말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글이었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이 글을 온전히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각자의 과거를 이야기하다 보니 저 말이 썩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너는 특별해’라는 특정한 말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양육자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러다 양육자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양육자의 반응이 따뜻함이 아닌 냉소에 가까운 채 그것이 반복되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어.’하는 식의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생겨난 일종의 트라우마는 인격 형성을 거치는 과정의 아이들의 정신에 부작용을 유발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아이는 생존에 있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며 이에 의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양육자의 사랑이 ‘조건부’로 보이게 되면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특별해야만, 우월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한 번 박히면 이제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체적 매력에 집착하거나, 특정한 말투 또는 어떤 관심을 끌만한 행동을 통해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 하게 된다.

이는 패턴이 되어 습관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습관화된 패턴은 무의식 중에 항상 타인의 시선 앞에 자신을 앉혀놓는다.

그러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 시선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게 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게 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대중의 관심을 과하게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 그 경향이 더 뚜렷해 보이는 것 같다.

"사랑을 못 받는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야"

대중들의 사랑을 못 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 스스로 필요 없는 사람이라 자책하고 고통받는 것이다.

항상 예쁘거나 완벽해야 한다는, 혹은 모든 욕망을 억눌러가면서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이는 엄청난 피로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이 주는 불안은 한 사람의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늘 긴장감과 불안에 사로잡혀 생활패턴이 무너지고 만성적인 불면을 겪다 이것이 발전되면 공황장애가 올 수도 있고 심하면 연극성 인격장애가 오기도 한다.

그 끝엔 결국 죽음으로 위로받고 싶은 충동이 올 수 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해 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랑은 그 아이가 못나 보일 때 더욱 살피고 보듬어주는 것 아닐까?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자기의 내면적 가치를 믿지 못하므로 자기의 외적 가치를 증명하는 데 목을 매며 평생을 소모하는 반면 아이가 약점을 보이고 실패할 때 부모가 그대로 받아주고 믿어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받아들인다.

아이는 자신을 한결같이 믿어 주는 부모 앞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꽃을 피우듯 마음을 피워낸다.

그래서 비로소 한 인간, 특별하지는 않아도 스스로에게만큼은 유일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처방전을 하나 주고 싶다.

밖에 나가 아이들이 장난치고 떠드는 모습을 보라고. 아이들은 모두 '나는 나야'라고 외치는 것 같지 않은가. 자의식 없는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잘나거나 중요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으로 자기답게 논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절로 느끼게 된다."





‘누구나 특별하고 소중하다.’

나는 그 말이 누구나 있는 그대로여서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른 이들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한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도취되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 적지 않은 돈도 벌고 대표님 소리도 듣고 있으니 스스로 아무리 경계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한 믿음, 내가 가는 길에 대한 믿음. 물론 자신을 향한 신뢰에는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나만 특별한 사람'이라는 교만에 도취되어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잠시 멈춰 섰다 유연하게 다른 방향으로 길을 트는 회복 탄력성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택배 일은 나에게 ‘나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매일 정해진 구역에서 반복되는 단순 업무는 내 내면을 더 단단하게 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내가 건강하고 감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도 나처럼 스스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땀을 흘린 만큼 돈이 들어오는 정직하고 투명한 일.

나쁜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

하루치 일을 무사히 마치고 얻는 안도감과 작은 성취감.

고객들의 감사 문자와 통장에 숫자들이 점점 늘어가는 동안 한동안 잃어버렸던 내 삶을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남들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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