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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26. 2019

하나는 악이다. 둘도 악이다. 그 외 악은 없다.

어린 아이에게

반댓말로 짝지워진 낱말 카드를 보여주며

한글을 가르친다.

밝은 건 낮이야. 낮이 아니면 밤이야.


낮과 밤.

밝음과 어둠.

높음과 낮음.

더움과 추움.

양과 음.

남자와 여자.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건강과 병.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행복과 고통.

삶과 죽음.  


아이는 두 장의 카드를 보며,

세상 모든 것은 두 개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는 궁금해진다.

노을지는 순간은 밝으면서 어두운데,

그렇다면 그것은 낮일까 밤일까?

종교는 선한 목적으로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렇다면 종교는 선인가 악인가?

세계가 뒤집히면

가장 높은 곳이 가장 낮은 곳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높은 것일까 낮은 것일까?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젊은이 같은 노인, 노인 같은 젊은이.

병든 건강, 건강한 병.

추한 아름다움, 아름다운 추함.

죽음 같은 삶, 삶 같은 죽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명확하지 않은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사이에 있는 것으로

득실댄다.

어떤 것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둘로 구분할 수 없다.


전쟁, 억압, 박해, 폭력.

'악'은 구분에서 온다.

대립은 오직 구분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악'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악'은 오만이요, '악'은 어리석음이다.


하나는 악이다.

둘도 악이다.

그 외에 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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