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했던 나는 어른들이 산에 간다고 하면 기필코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따라나섰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땐 그랬다.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다닐 무렵 가을이었던 것 같다. 일요일이던 그날도 동네 아저씨 두 명이 산에 복령(茯苓)을 캐러 간다고 나서길래 나도 따라간다며 채비를 한다.
"꼬마야! 집에서 놀지 그러냐?"
"싫어요! 나도 복령 캘 줄 알아요. 따라갈래요."
"네가 복령이 뭔 줄이나 알고 그러냐?"
"뭐, 잘은 모르지만 아저씨가 캐면 나도 캘 수 있어요."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가르쳐 준다고 다 캐는 거 아니야. 그냥 집에 있어라."
"응?"
"그래도 따라갈래요."
"그럼 우리 따라올 수나 있겠어?"
"당연하지요. 저 산 잘 타요."
"하하하" "내가 졌다. 가자 가."
"대신에 못 따라오면 우린 너 책임 안 진다."
가자는 말에 나는 서둘러 배낭을 챙기고 약괭이(일반 괭이의 절반 정도 크기에 끝이 뾰족하게 생김)를 준비하고 복령을 캘 때 필요한 쇠꼬챙이(T자 모양의 나무 손잡이에 1m 정도의 쇠로 된 지름 1mm 내외의 쇠봉을 박아 만들고 끝은 뾰족하게 만든 도구)를 챙겨 준비를 끝냈다. 남들 하는 걸 보면 흉내는 잘 냈었다. 그런 내 행동을 보던 아저씨들은 똑소리 나게 챙긴다고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출처:Pixabay
사실 동네 아저씨들은 가까운 산에 갈 때 가끔씩 나를 데리고 가곤 했다. 멀리 가면 내가 따라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그럴 땐 나를 찾지도 않지만, 가까운 산으로 갈 때 나를 데리고 가면 재미있다며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그날도 집에서 놀라며 말은 가지 말라고 말리는 듯했지만 이미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 우리 집에 들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배려하기 위해 나를 가운데 세우고 앞뒤로 서서 산을 올랐다. 어느 정도 오르자 아저씨들은 나에게 복령 캐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복령은 땅속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데 보통 둥근 타원형이지만 고구마처럼 길쭉하게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살아있는 소나무보다는 죽은 지 4~5년 된 소나무 뿌리에 있기 때문에 죽은 소나무를 찾아서 그 주변을 쇠꼬챙이로 찔러보며 살펴야 한다고 했다. 소나무의 굵기에 따라서 뿌리를 뻗은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확인하는 거리를 가늠해서 살피라고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저씨들이 쇠꼬챙이를 땅에 쑤시는 것을 잘 봐 뒀다가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십여분을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쇠꼬챙이가 땅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찐득한 느낌이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쇠꼬챙이를 빼내 끝을 살펴보니 하얗게 뭔가 묻어 있었다. 아저씨를 불러 하얀 가루 같은 게 묻어 나온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복령을 찔렀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하며 내가 쇠꼬챙이를 찔러 넣었던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조금씩 파내려 가지 땅속에 검은 뭔가나 보이기 시작했다. 소나무 뿌리와 비슷한 색을 한 복령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와~ 크다." 그러시면서 흙을 더 넓게 파기 시작했다. 굵은 소나무 뿌리가 복령의 위를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아래에 위치한 복령이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커 보였다. 나무뿌리 때문에 한참을 파고 나서야 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내 머리 두배는 넘어 보였고, 타원형의 살짝 찌그러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꼬마야! 너 오늘 한 건 했다."
"내가 분명 지나친 자린데 어떻게 그게 너한테 걸리냐."
"거 봐요. 내가 따라오길 잘했죠?"
"그래, 너 데리고 오길 정말 잘한 거 같다."
"축하해. 오늘 엄마더러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해라."
그날 나는 내 생애 첫 복령을 캐게 되었다. 그것도 초대형 사이즈를 말이다. 그 후 아저씨들은 여러 차례 복령을 캤지만 내가 캔 복령보다 모두 작은 것들 뿐이고 큰 것은 못 찾았다.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계속 복령을 찾았지만 나는 더 이상 찾지 못했고, 아저씨들은 작은 사이즈지만 각각의 배낭에 절반 이상 캤던 것 같다. 그래도 그날 내가 캔 복령이 최고의 크기였기에 더 이상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껍질 벗겨 말린 복령. 출처: https://blog.naver.com/xlrurxorur11/220867215513
그날 집에 돌아와 가족들한테 자랑을 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복령을 팔았던 것 같기는 한데 얼마를 받았는지, 엄마가 그 복령을 팔아서 나를 줬는지 조차 기억이 없다. 그거야 어쨌든, 아저씨들보다 훨씬 큰 복령을 캤다는 기쁨에 들떠 그날 하루는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최고의 기분을 만끽한 나는 그 뒤로도 아저씨들을 따라 몇 번 더 산에 갔다. 그러나 그 후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 나는 복령이 땅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소나무 진액이 뭉쳐져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크고 단단하기에 소나무 뿌리에서 생기는 약초이거니 생각했다. 그러다 나중에야 복령이 버섯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긴 것은 꼭 고구마 모양이나 둥근 타원 모양을 하고 있고 소나무 껍질 같은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보인다. 먹어보면 별 맛이 느껴지지 않아 집에서는 복령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은 기억은 없다. 보통 복령은 두 가지 색이 나타나는데 흰색은 일반 소나무 뿌리에서 나고, 붉은빛이 도는 것은 금강송 뿌리에서 생긴다.
복령(茯苓)은 주로 한약재로 사용된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복령을 말려서 팔기도 하고, 술에 담그기도 했던 것 같다. 주워들은 기억에 의하면 복령은 이뇨작용을 하며, 혈당을 낮춰주고, 설사에 약효가 있다고 알고 있다. 다른 약효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한의원에 가면 많은 약재들이 갖춰져 있다. 그 많은 약재들을 어디에서 구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릴 적에는 약재만 전문적으로 구해서 파는 사람들도 있어서 구하기 쉬웠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요즘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산에 다니는 것도 힘들 텐데 과연 국산 한약재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