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커피 한 잔의 시간
1.
오후가 죽었다
정확히는 3시 17분 21초
쏟아지던 정적에 눌려
햇빛은 폐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찬장의 스푼을 들어
햇빛을 뒤적였다
기억이 썩는 소리가 났고
벽지가 울음을 삼켰다
2.
태풍은 예보되지 않았다
무취의 바람이 식탁 위를
네 번째 생일처럼 스쳤고
코너에 주저앉은 바람개비 하나,
속도를 잃었다
‘시간은 누구에게 부패되는가’
나는 아까부터
가만히 냄새만 맡고 있었다
3.
그때
냉장고 안쪽에서
따뜻한 냄새가 났다
무언가 오래 앓던 것이
발효 중인 것처럼
4.
밖은 여전히 낮이었지만
누군가는 밤을 꺼내고 있었다
가장자리부터 새카맣게 젖은 그림자들이
장판을 징검다리처럼 건넜다
그리고 마지막,
텅 빈 머그컵 안에
향기 하나 죽어 있었다
그건 시든 오후의 사체였고
나는 그 옆에서
시계를 덮었다
시간은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