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차오르던 넉넉함이
한순간 출렁이고 나면
설움은 이 빠진 자리에 남습니다
쓸모 잃은 접시 하나
텅 빈 가마 한쪽에서 바람 불러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놓아두었더니
방랑이 놓고간 바람곁에 민들레 홀씨 하나
그 자리에 터를 잡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보던 접시,
햇살이 금 간 옆구리를 어루만질 때
바스러진 빛 사이로
노란 호흡 하나 간신히 내어 쉽니다
지붕 잃은 집에도
주인이 생긴 걸까요
민들레 등불이 켜진 것을 보면
열 오른 하루의 갈증을 달래는
노란 알약 하나
언저리에서 걸어 나와
일몰을 처방합니다
따뜻한 그리움이 목울대를 타고
저물어가면
잘 익은 달 하나
어둠의 이마 위에 조용히 얹힙니다
이제 나는
바람을 다시 기다립니다
지워진 이름이라도
한 번은 불릴 수 있기를 바라며
흠집 난 풍경이
누군가의 눈에
처음으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바라며
버림은 언젠가
필요를 피워내니까
바람은 다시
홀씨가 되어 올 테니까
지금, 여기
이 자리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