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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02. 2020

36. 절대악이 존재하는 세계와 여기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서

나는 오늘 큰 세계를 보고 왔다. 어느 작가의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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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uesday

Me

Wedesday

Me


이렇게 매일 좁은 세계에 갇혀 허우적대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에 눈이 뜨였다. 영화 <사마에게> 덕분이다. 이 영화의 부제는 '지켜야 할 나의 도시, 나의 딸'이다. 엄마이자 감독인 와드 알-카딥이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된 도시 알레포에서의 '일일 폭격 드라마'-영화에서 와드의 이웃이 자조하며 하는 말-를 생생히 영상으로 담았다. 매일 같이 폭격이 일어나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상자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물자가 부족해져 자유에의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Show, Don't Tell', 스토리텔링의 제1원칙을 충실히 따르기라도 하듯 영화에선 보인다.


영화를 보고난 후 광화문 거리를 거닐었다. 알레포와 달리 너무나 고요한 그곳엔 견고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우뚝 서있었다. 방금 전 내가 보았던 세계와의 이질감에 복잡한 마음이 됐다. 못나게도 내 안위에 대한 안도와 상대적 행운에 대한 감사가 본능처럼 들었다. 하지만 수전 손택이 말했듯 그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전시된 타인의 고통을 쾌락처럼 향유하며 고작 이 자리의 나를 만족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이 모든 불행과 불안을 일상에서 기록해온 감독에게 할 짓이 못됐다.


혹자는 이 영화를 계기로 한때 논란이 됐던 시리아 난민 사태를 돌아보자고 했다. '우리 국민 먼저'를 외쳤던 일부 국민들의 난민 혐오를 떠올려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했다. 동의한다. 이미 지나간 사건이 됐지만 '우리'라는 범위의 확대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필요한 때다. 필수일 수도 있다. 함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인류의 위기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산적해있지 않나. 비단 난민뿐 아니라 동물권, 환경도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거시적인 사안이 아니라 국내 문제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 듯 싶다.


영화에서는 절대 악이 존재한다. 권력욕에 자국 국민을 학살하는 알 사드 대통령이 악이다. 자유에의 열망, 고향에 대한 애정,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는 처절함으로 뭉친 알레포 시민은 절대 선이다. 반면 현 한국사회에 절대 악도, 선도 없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진 탓이다. 1970, 80년대  절대악으로 여겨졌던 권위주의 정권은 무너진지는 오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토론과 합의가 중요해진 지금 더 나은 나라를 위한 발걸음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회 문제가 산적한 분야들, 예컨대 노동, 인권, 환경, 정치에서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전문가가 돼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와드는 진실을 알리는 저널리스트였고, 남편인 함자는 생명을 구하는 의사였다. 난 기자를 꿈꾼다. 그러나 시리아와 달리 한국엔 정보를 전달할 기자 수가 아마 배수 이상일 테니 그저 기자이기만 해선 안 된다. 물론, 그녀가 처한 특수한 환경이 그녀 활동의 희소성을 키우기도 하지만.


사회를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경험하고자 기자를 꿈꿔왔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서면 내가 집중하고픈 분야가 생기지 않을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지옥 같은 세계를 딸 사마와 무고한 아이들이 다시 겪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와드처럼 나도 미래 세대에게 지금보단 나은 사회를 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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