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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r 16. 2020

73.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

전화가 끊겼다. 아빠와의 통화였다. 1분도 채 안 되는 통화. 오늘도 아빠는 어눌한 목소리로 내게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응, 하고서 내가 되묻기 전에 아빠는 횡설수설하다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통화는 내게 작년 봄여름 그리고 가을, 세 계절에 걸쳐 반복됐던 일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와 무심하게 끊기는 전화에 나는 싫증을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받았다. 집을 떠나 있는 내가 아빠 곁을 지키는 최소한의 그리고 유일한 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 아빠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50대엔 몰랐는데 60대에 앞 숫자가 바뀌니까 기분이 이상해”라고 말하던 아빠는 은퇴와 함께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약의 부작용으로 아빠의 눈빛은 말끝처럼 흐려지기 시작했고 몸은 야위어 갔다. 엄마는 그즈음이라고 했다. 아빠의 방문이 닫히고, 그가 매일 내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 때가. 우리는 그의 방과 같던 통화를 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고 짙은 어둠이 느껴지던, 그런 통화.  


아빠가 하루 종일 누워있던 방 안은 한낮에도 커튼을 쳐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 어둠이 그의 얼굴에 그늘로 졌다. 이따금씩 집에 가 보았던 아빠가 그랬다. 구부정해진 허리에 정리되지 않은 머리, 칙칙한 낯빛의 한 중년 남자. 나이와 질병 앞에 약해진 그와 그 곁을 항상 지키는 엄마를 보는 일은 내게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아직 내 생이 버거워 그들에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지 못하는, 아니 않는 내 이기심에 화가 나기도 했다. 아빠의 전화를 받는 일은 그 죄책감을 더는 방법이었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갱년기에 겹친 우환에 아빠보다 엄마가 먼저 무너질까 걱정됐다. 엄마는 매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녀에겐 신이 없었다. 점괘는 맞지 않았다. 그녀가 믿고 기대는 것은 자식이었다. 그 시간을 멀리서 라도 함께 하는 아들과 딸. 엄마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씩씩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 상황을 잘 이겨내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새해, 새로운 봄을 맞았다. 아빠의 전화는 잦아들었고, 대신 그의 방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약을 줄였고, 매일 뒷동산을 산책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아빠 방엔 햇볕이 들었다. 방의 주인과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걸었다. 앞서 걷던 아빠 등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잘 지나갔어.” 나는 답했다. “아빠랑 엄마가 고생했지.” 그러자 엄마는 다시 말했다. “우리가 같이 했지”라고. 힘겨웠던 시간 속에 ‘우리’가 해낸 일이라고 했다. 아빠가 돌아서서 말했다. “너 보고 버텼지.”


곁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던 나는, 이제 당신들의 애씀이 내 곁을 더 오래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안다.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흔들리던 시기에 그들을 붙잡아준 것이 나의 존재였다고 말해줘서 기뻤다. 그래서 꼭 전하고 싶다, 감사함을. 어릴 적 어버이날 카드에 쓰듯 뻔한 말이지만 존경과 진심을 담아서. 그 시간을 버텨주어서, 그리하여 서로 곁에 남아 우리가 우리로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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