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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Feb 08. 2024

훼방꾼 VS 동맹군

글쓰기를 왜 망설이는가?

"이렇게 쓰면 되나 모르겠어요....."

"제 마음 속에 검열관이 있나봐요.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더 나아가지 않아요."

"다 썼는데도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겠어서 나만 보기로 해두고 있어요."


글쓰기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요 푸념이다. 비단 글쓰기만이 아니라 삶 전반적인 곳에서 이런 호소들을 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기에 어떤 마음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오는지 잘 알겠다. 강사들이 자주 비유하는 말이 있다. 우리 마음이 키우는 개가 두마리기 있다고. 편견과 선입견. 볼 '견(見)'을 개 '견(犬)'으로 음만 차용해서 비유로 든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득한 내 마음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지, 몰아내고 수용적인 마음으로 상대와 소통할 것인지 묻는 것. 얼마 전에는 또 다른 개 한 마리를 입양하신 분을 봤다. 그래서 그런 편향적인 사고관이 아닌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의 끝소리 견을 불러내면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한층 더 나아간 느낌이라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어떤 개가 내 영역을 차지할지 정해진다. 마음의 선택이 중요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관계의 소통에만 해당될까? 글쓰기를 하는데도 수시로 이 개들이 출몰한다. 글이라면 완결성을 가져야 해, 이 정도 쓴 걸로는 어디 내놓을 수가 없어. 더 잘할 수 있는데 이것밖에 못할까? 등 수만가지의 부정적 신호들이 올라온다. 글쓰기가 지옥문을 열기라도 한 듯, 심한 경우에는 나는 할 수 없어, 좀 더 다듬고 완벽하게 해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해, 더 잘하고 싶은데 이게 내 한계야 등등으로 확장된다. 그야말로 나에 대한 온갖 불신과 못마땅함,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 등이 신념화가 되고 자신의 핵심신념으로 자동화 구조 안에 등극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이들이 거쳐가는 자동화 구조 속의 생각들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오래도록 주입을 했으니 뇌가 깜빡 속을 밖에는. 너도 나도 숱한 질책과 비난을 동반했던 평가사회, 사회화 과정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



그럼 워쪄? 워떠케 해? 나는 글쓰기 참여자들에게 '잘'과 '못' 이 이룬 하모니, '잘못' 이라는 단어를 걷어내기만 해도 삶이 편안해짐을 누차 강조한다. 그래서 잘쓰고 잘못쓰고의 감옥에서 헤어나오시라고. 입말에도 습관처럼 붙어 있는 잘과 못을 걷어내서 다른 말로 대체하자고.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고 비난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그럴싸해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엄정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잘 쓴 글이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글이 인기가 있다. 의외로 현업 작가들이 브런치스토리 진입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 반면 글솜씨는 크게 없는데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무슨 이유일까? 글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도 진솔함을 이기지 못한다. 투박해도 살아있는 내 이야기가 사람 맘을 움직인다.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잘쓰 못쓰고가 아니라 얼마나 흥미로운 소재를 품고 있어서 툭 찔러만 줘도 말이 슬슬 풀리는 '이야기꾼'을 모시고 싶어하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잘 써야 돼라고 압박하는 완벽주의자를 물려내도 되고, 다른 이들과 우열을 다투며 지옥성을 짓는 따라쟁이 같은 훼방꾼은 접어둬도 되겠다. 외려 너는 고유한 존재로 너 자체이기만 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다정이, 그냥 네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기다리는 궁금이들과 동맹군을 맺으면 되겠다. 1주일은 내부의 검열관 눈치를 보느라 오금을 못 펴던 수강고객들이 이제는 쓰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매일 아침이 기다려진다고 표현한다. 쓰는 일이 고통이 아니라 자신과 친해져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내면에 있는 자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자원들을 지금미래를 위해 다양한 변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인간은 원래 그러하다. 유발 하라리가 그렇지 않던가, 이야기로 먹고 사는 존재라고.



'닥치고 써라'라고까지 선정적으로 말하는 책도 있었다. 목까지 차올라서 내뱉지 않고는 안되는 네 안의 수런댐을, 웅성거림을, 옹알거림을, 외침을, 절규를......실컷 쏟아붓고 나면 글들이 절로 길을 내며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라고 퇴고가 있는 거다. 퇴고는 몇 번이고 유효하다. 결국 퇴고를 얼마나 충실히 했느냐가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 근데 로또를 사야 당첨될 기회도 얻는 법. 일단 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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