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언어 : 존재의 언어
글 한 편을 써나가다 보면 머리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 한장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뜻을 직관적으로 전하고 싶어진다. 문득 Chat GPT 뤼튼 생각이 나길래 대화창을 열었다. 내딴에는 상세하게 원하는 상태의 느낌을 살려서 표현해봤다. 그런데 이 녀석은 잠시의 숙고 시간도 없이 몇 초마다 네 컷씩 그려낸다. 성의를 보이지 않는 태도는 결과물로도 보여진다.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온다. 대화창을 붙들고 더 자세히, 더,더,더를 외쳐봤지만 별반 다를 바 없다. 3.5 무료 버전의 한계인가 싶다가, 아무리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딥 러닝에 또 러닝을 거쳐봤자 내가 심상에 그리는 것을 표현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림은 '선(線)'이 생명인데 사람을 표현하는 선이 다 인위적이라 생명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처럼 미학적 느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이런 디지털 세계가 별로 흥미롭지 않다.
디자인을 포함하는 마케팅에서 강조하는 개념이 '고객 중심적' 사고이다. 오늘 나라는 고객을 만난 Chat GPT 뤼튼은 고객 중심적 사고 체계를 가지지 않았나보다. '속도'에 있어서는 경탄을 할 지경이나 최종적으로는 매력적 결과물을 제시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느낌'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니 외려 답답함만 커져있다. 오픈AI의 연구자들은 어디까지 고객중심적 사고를 고려하고 시작했을까? 행여 불가능해보이는 일들이 눈앞에서 구현되어 가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있다는 치적에 경도되어 취하지는 않을까? 자신이 감각적으로 느끼고 감성을 표현하는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아예 구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창업을 하거나 사업 확장을 하고자 할 때, 제품 생산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시기가 있다. 과다 몰입이 된 상태에서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제품화하고 구체화할 수 있을까에만 매몰되기 쉽다.
소비자의 욕구나 시장의 요구를 뒷전으로 했을 때 망한다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고객중심적 사고를 하라고 주문한다. '니 생각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냐고?' 고객의 필요와 문제점이라는 사고 바탕 위에 시장조사, 고객 피드백, 고객 경험 분석, 추적 고객 설문 조사, 전문가 그룹의 인터뷰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그런데 난 그 정도만으로도 부족하다 생각한다. 거기서 또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런 욕구를 느끼는 고객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어서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문제를 안고 있고 해결하려고 하는지 사람에게 더 깊은 집중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무엇을'이 아니라 '왜' 이것을 원하고 고객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한 연후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할 일. 그래서 더 나은, 더 획기적인, 세상에는 없는.....이라는 기치가 드높이 휘날리며 '사람'을 잊어버린다.
코칭 현장에서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온 '사람'에 주목하라고 하는 것이 철칙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지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겠으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조언이나 컨설팅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빠른 방법을 선택하고 싶어진다. 특히 자신이 잘 하거나 방법을 알고 있는 분야다 싶으면 입이 근질거려진다. 이를 두고 코치의 에고가 올라온다고 한다. 이미 나는 고객을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고 단정짓고, 나의 전문성을 통해 오로지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고객은 코칭을 받는 시간 역시 개인적으로 사고와 의식이 성장하는 시간으로 조금은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야 사유 활동도 활발해진다. 그 기회마저 빼앗아 버리는 꼴이 되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해도 선한 의도로 볼 수 없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몰아가는 건 Doing적 행위에 머물러 있음이다.
이 사안을 가져오기까지 혼자 고민하고 생각했을 고객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마음 밑면에 있다. 그 밑면에 숨은 마음을 들으려 애쓰는 일, 경청의 자세이다. 그 일이 고객에게 왜 중요한지, 고객에게 어떤 유익을 줄 것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으며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탐색하다보면, 그런 사람이고 싶어서 이 사안을 잘 해결하고 싶어진다. 하나하나 질문을 해나가면 대부분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큰 이유와 목적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자신이 참 소중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런 가치를 가진 사람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생각없이 방안을 찾고, 실행하겠다고 약속하기 힘들어진다. 자율성을 가진 책임감은 늘 묵직하게 느껴져서 자신이 진짜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도록 한다. 코칭은 달리 뭘 할 것이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오로지 한 존재를 향한 빛을 멈추지 않고 쪼이는 일. Being의 힘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내가 참화를 겪었을 때, 벗과 지인들이 그저 버텨만 달라고 제법 거액이 넘는 돈들을 보내온 적이 있다. 그들은 한 차례도 돈을 갚으라 채근한 법도 없고 외려 돌려주고자 해도 받을 생각을 않고 계좌번호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갖은 수단을 써서 갚아나가고 있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던 이야기들이 있다. 아무 것도 하려하지 말고 돈을 갚으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네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가장 추한 상태로 나락에 떨어져 꼼짝하지 못하는 내게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런가하면 사람이 눈앞에서 제 일을 돕고 있는데 그림자 취급을 하는 이도 있었다. 물질로 환심을 산 후, 가스 라이팅을 하며 갑질하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도 만났다. '존재'에 대한 두 얼굴을 맛보면서 언제나 나는 어쩌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을 한다.
코치의 언어는 고객의 행위에 주목해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객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기다린다. 고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길이 모험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이룰 것임을 믿는다. Doing이 아니라 Being에 주목할 때 코치는 제일 코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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