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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ni Apr 07. 2024

참을 수 없는 '죽음'의 가벼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봄도 아직 안 지났는데 왠 공포물 이야기냐고? 이제 곧 더워질 것이니 걱정 마시라...


 무더운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공포물이 대세다. 실제로 무서운 영화를 보면 체온이 내려간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처럼 ‘납량’(納涼, 여름철 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느낌)을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공포물을 찾는다. 그건 매해 마찬가지다.


 공포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도 <파묘>와 같은 공포영화가 개봉하여 오컬트 영화로는 드물게 천만관객 고지를 점령했다. 웹툰에서는 <기기괴괴> 등 다양한 공포만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 작가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단편집, 소설(「한국공포문학단편선」 등), 게임,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공포물은 존재한다.


 여기서 질문.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공포물이 많은 것일까? 그것은 물론 공포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일 것이다. 특히 MZ세대들은 좀비, 뱀파이어 등이 나오는 공포물을 비롯하여 추리, 스릴러물에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지만, 가장 1차적인 원인은 공포물이 ‘즉각적인 즐거움’을 준다는데 있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재난영화를 보는 것도 모두 거기에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번지점프를 하면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지만 안전장치가 있어 생명에 지장은 없다. 재난영화도 눈앞에서는 대지진에 건물이 무너지고 댐이 갈라져도 나는 푹신한 극장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희열’을 맛보게 된다.
 

 공포영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한 것도 이러한 본능적 재미추구를 확실히 증명한다.

 좀비를 예로 들자면, 과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같은 좀비영화 원작에서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좀비 무리가 사람들을 쫓아왔지만, <시체들의 새벽>, <28일후>, <월드워Z>같은 근작들에서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사람들을 뒤쫓는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외에도 <데스티네이션>, <쏘우> 같이 등장인물을 쉽게 죽이는 영화들은 쉽고 빠르게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역치값’이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엽기적인 살인 장면에서 눈을 돌리게 되지만, 시리즈를 통해 살인이 계속되면 좀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좀 더 창의적인(?) 방식의 죽음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기대가 충족될 때 만족감을 느끼고 거기에 탐닉하게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의 문제를 한없이 가볍게 여기고 유희적으로 쉽게 살인하는 콘텐츠들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공포물도 철저히 상업적인 논리로 개발되고 제작된다. 공포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제작해서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마녀 전설을 찾아갔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세 명의 젊은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블레어위치>가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도 그 해 처음으로 개봉하는 공포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는 속설이 존재하여(과연!), 매년 끊이지 않고 공포영화가 나오고 있다. 한 번 흥행한 ‘팝콘’과 같은 공포영화가 시리즈 형태로 줄기차게 나오는 것, 서점 도서코너에 아이들을 위한 공포도서가 전시되어 있는 것,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무서운 이야기를 다운받거나 읽을 수 있는 것. 이들 모두는 공포물이 돈이 되는 산업이라는 증명이며, 이런 가벼운 공포물들에 젊은 세대는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공포물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진중하게 다룬 콘텐츠들은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숨바꼭질>이나 <여고괴담> 그리고 <불신지옥>과 같은 공포영화들은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강하다. <숨바꼭질>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층 간 대립을 다뤘고, <여고괴담>은 학교 내 왕따 문제, 성적문제를 다뤘다. <불신지옥>은 기독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작품으로, 맹목적인 믿음이 광기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같은 작품은 어떠한가? 스마트폰에 의존적인 현대인에게 있어 분실한 스마트폰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가 된다. <도어락>이 보여주는 공포는 타인과의 교류없이 단절되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시대의 '도시전설' 같은 공포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감독 박찬욱은 ‘관념적인 주제를 장르영화의 관습으로 풀어낸다는 야심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라고 의견을 본인의 책 <오마주>에서 밝힌 바 있다. 공포영화는 전통적으로 신, 영혼, 존재, 기억, 시간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과 친숙한 장르라는 이야기다. 크리스천에게 죽음이나 천국, 구원과 같은 개념은 서로 뗄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가장 잘 다루는 장르영화(=공포영화)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팀 라헤이, 제리 젠킨스가 공저한 「레프트 비하인드」(홍성사刊)가 있다. 총 12권의 책이 나온 이 시리즈는 시카고를 떠나 헤스로우로 향하는 보잉747 비행기 안에서 탑승객들 중 절반가량의 사람들이 겉옷과 결혼반지, 치아 보철 등을 고스란히 좌석에 남긴 채 갑자기 사라진 사건으로 시작된다. 남겨진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와 대적하면서 예수님의 재림까지 겪는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2014년에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죽음’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진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주제이다. 성경 또한 이 주제와 관련하여 수많은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 그리고 그 이후에 영생과 영벌로 나눠진다는 말씀은 두려운 말씀인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악인은 심판을 받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 받은 의인은 하나님의 전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불의하고 패역한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힘이 된다. 아울러 우리가 세상에게 힘주어 전해야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올여름, 또 어떤 공포물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게 될까. 성경에서는 죽음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살펴보고 공포물이 고발하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돌아보는 것도 오는 여름을 의미 있게 보내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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