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버터 샌드위치

아들에게는 추억 나에게는 미안함

by 올리가든

아들이 네 살, 품 안에 폭 안기는 어린아이 때 나와 남편은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날마다 과제물에 매달려야 해서 낮 동안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아들은 9시부터 시작하는 프리스쿨에 가야 했다. 대학교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그곳은 아침에 데려다주고 오후 5시는 되어야 데려오는 한국의 종일반 어린이집 같은 곳이었다.


어린 아들에게는 세상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얗거나 검은 피부색과 푸른 운동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자기가 하는 말을 그들도 못 알아듣는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처음 데려간 날 집에 와서는 내일은 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 달래 보았다. 그 후로도 2주 동안 아이는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울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골프를 치러 가자고 했다. 주말에 아빠와 다니던 골프연습장은 학교 근처의 들판에 있었다. 5달러에 작은 양동이 가득 담긴 공을 칠 수 있었다. 아들은 엄지손가락 피부가 벗겨지도록 공을 다 치고 난 후에야 약속한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라도 어린이집 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었던 것일까.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아들은 스스로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했다. 적응을 하면서 재미가 생겼나 보다. 점심을 각자 준비하는 곳이라 볶음밥을 싸 줄까 물어보니 싫단다. 밥 먹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을 터였다. 다른 아이들이 준비해온 점심을 보니 채소나 과일에 빵 정도였다. 집에서 가끔 먹는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과일을 넣어주었다.


아이를 데리러 갔던 어느 날, 담임인 아만다 선생을 만나 아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샌드위치 먹기 싫어하는 것 같다고. 두 개 중 한 개만 먹고 오는 때가 많았다. 그곳에서 주는 요거트를 먹고 사과 한쪽과 샌드위치를 조금 먹은 거였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고민이 시작됐다. 무얼 만들어 보내야 잘 먹을까. 유학생들이 모이는 바비큐 파티에서 인기 메뉴인 김밥이 생각났다. 아들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매일 아침 김밥을 한 줄씩 만들어 과일과 함께 넣어주었다. 아만다에게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아들이 가져오는 음식 이름이 뭐냐며 궁금해했다. 김밥이라고 했더니 모양이 너무 예뻐서 점심때 도시락 통을 열면 모든 아이들이 바라보고 관심을 가진다는 거였다. 그러면 아들은 먹어보겠다는 친구들에게 한 개씩 나눠준다고 했다. 그 후부터 김밥을 두 줄씩 쌌다. 아만다가 말하길 아들은 어디서 힘이 그렇게 나는지 에너지 넘치게 잘 논다고 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다른 날 보다 일찍 데리러 갔던 날, 아들은 친구들이랑 절구통에 나무껍질을 넣고 찧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젠 언어도 늘어서, 재잘대며 노느라 엄마한테는 인사만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이제 적응했구나 싶었다. 김밥을 또 만들었다. 피크닉에나 가지고 다니는 큰 밀폐용기 가득하게 김밥을 싸서 어린이집에 가져갔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드시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만다는 저녁에 빈 통을 내주면서 일본 식당 스시보다 맛있다고 했다.

우리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들은 김밥과 야채 볶음밥, 가끔은 샌드위치와 과일을 점심으로 먹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아들이 학교를 다니며 아침 메뉴가 빵이 되는 날에는 땅콩버터 잼을 발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싫었던 그것이 이젠 생각이 나는가 보다. 땅콩버터 샌드위치는 나에게 마음 아픈 음식이고 아들에겐 추억이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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