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두루치기

반들반들 고소한 돼지기름의 맛

by 올리가든

혼자 밥을 사 먹어야 할 때면 제육볶음이나 돌솥비빔밥을 고른다. 비빔밥은 어느 집에서 먹든 기본은 하니 믿고 먹는 메뉴고 제육볶음은 맛있기를 기대하고 먹는다.

돼지고기를 맘껏 먹어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어릴때는 장날이나 돼야 그것도 어쩌다가 한번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돼지고기 요리에 마늘은 필수였다. 농사지은 마늘은 한 접씩 묶여 부엌 기둥에 걸려있었다. 잘 마른 야문 것을 한 통 까서 절구에 빻으면 매운 냄새가 싸아했다. 잘못 찧으면 마늘쪽이 절구 밖으로 튀어나가거나 가끔은 즙이 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 독하고 강렬한 것에 놀라고 따끔거려 눈을 씻어내느라 찬물에 세수를 하고 법석을 피웠다.


넓적한 양푼에 고추장과 빻은 마늘을 충분히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대파를 대충 섞어 놓는다. 간장과 참기름 설탕을 조금만 넣어준다. 돼지고기는 두툼하고 불규칙하게 썰어야 맛이 있다. 껍질이 있는 돼지고기가 더 좋다.


돼지고기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배도록 뒤적여 주며 볶는다. 익어가며 고기에서 기름이 나온다. 다 익을 때쯤 고추장으로 간을 맞춘다. 푸릇한 쪽파나 대파를 손으로 후드득 뜯어 넣고 숨이 살짝 죽을 만큼만 익힌다. 돼지고기의 기름이 배어 나와서 번들거리는 빨간 국물이 자작자작한 맛있는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되었다. 모양을 내려하지 않고 고기도 양념도 대충 하는데도 맛있었다.

요리가 담긴 양은냄비를 아버지 상과 우리 밥상 사이 무쇠화로에 올려놓았다. 고기의 양은 늘 가족 수에 비해 충분하지 않았다. 화롯불에서 천천히 졸아든 국물이 냄비 바닥에 남으면 거기에 밥을 넣어 비볐다. 살짝 불 맛이 나고 매콤 짭조름한 돼지기름에 볶은 그 맛을 어디에 비할까.


냉동하지 않은 고추장 두루치기의 맛은 적당히 쫄깃하고 매콤하며 보드랍고 고소했다. 돼지고기의 껍질과 살코기 사이에 있는 하얀 부위는 생고기의 맛을 더했다. 그것은 요즘 삼겹살의 비계와 다른 맛이었다. 고추장 돼지고기 두루치기의 그 맛을 기억하면서 나는 때 없이 제육볶음을 주문한다.


어느 잘한다는 집을 가도 내가 알고 있던 그 다디단 맛은 아니었다. 고기가 너무 얇거나 퍽퍽하고 채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갔다. 단짠단짠이 대세라서 인지 양념 맛이 너무 강하다. 돼지고기가 귀하지 않아서이거나 유통과정을 덜 거치는 생고기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번번이 빗나가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맛을 찾는다.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일까. 부족한 고기 한 근을 둘러싸고 온 식구가 숟가락을 달그락거리던 그 겨울의 저녁밥상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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